'비운의 아기영웅' 페르세우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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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이복근 (211.♡.20.43) | 작성일 | 08-06-10 18:22 | ||
가톨릭 교황청이 있는 로마 시내의 작은 나라 바티칸. 교황이 집전하는 성탄절 미사로 우리 눈에 익은 산 피에트로(성 베드로)성당과 광장, 그리고 거대한 바티칸 박물관이 바로 이 작은 나라에 있다. 미켈란젤로의 벽화및 천장화로 유명한 시스티나 성당은 바티칸 박물관의 일부를 이룬다.
‘벨베데레의 아폴론’이라는 유명한 대리석상이 있다. 이 유명한 대리석상이 영어권에서는 그냥‘벨베데레’로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벨베데레’(Belvedere)는 원래 고유 명사가 아니다. ‘벨’(Beautiful)과 ‘베데레’(Sight)의 합성어인 이 말은 ‘전망이 좋은곳’(Fine outlook)을 뜻하는 일반 명사다. 바티칸 박물관중에서도 ‘전망이 가장 좋은 곳’인 이 공간은 지금 바티칸의 회화관(會話館)의 대명사가 되어 있다. ‘벨베데레의 아폴론’은 정확하게 말하자면, 회화관 내부에 있지 않고 회화관 안뜰(중정·中庭)에 전시되어 있다. 안뜰에 전시되어 있다고 해서 비바람에 노출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안뜰 처마 밑에 있으니, 비에는 노출되지 않았지만 바람에는 노출되어 있는 셈이다. 여기에는 아폴론상 뿐만 아니라, 일반인의 눈에 익은 유명한 대리석상이 몇 기(基) 더 있다. 거대한 뱀에 온몸을 감긴 채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라오콘 3부자(父子)의 모습을 새긴 ‘군상(群像)’그리고 메두사의 머리를 든 페르세우스 상이다. 바티칸서 홀대받는 고대 석상들 종교사를 공부하는 나같은 사람은, 가톨릭의 심장인 바티칸의 안뜰에서 고대의 대리석상을 둘러보면 정신이 그만 아뜩해지고 만다. 바티칸은, 인류의 문화유산이라고 할 수 있는인 고대의 대리석상의 진열 및 전시에 친절하지 못하다. 대영박물관과 루브르와는 이 점에서 크게 다르다. 바티칸에 가면, 기독교가 정복해 버린 고대 종교의 상징인 무수한 대리석상들을, 그 정복의 징표로 ‘처쟁여’두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하기야 바티칸으로서는 한갓 우상에 지나지 않는 고대의 대리석상을 필요 이상으로 예우하고 싶지는 않을 터이기는 하다. 걸작 대리석상 ‘벨베데레의 아폴론’, 라오콘 3부자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새긴 ‘군상’, 그리고 ‘메두사의 머리를 든 페르세우스’상에는 공통점이 있다. 뱀이다. ‘벨베데레의 아폴론’은, 왕뱀 퓌톤을 죽인 직후의 의기양양해 하는 아폴론을 새긴 걸작이고, ‘군상’은 거대한 뱀에 의해 목숨을 잃는 라오콘 3부자의 모습을 새긴 걸작, ‘페르세우스’는 머리카락의 올이 뱀으로 되어 있는 메두사의 모습을 새긴 걸작이다. 이에 대한 사진및 보충 설명은 아래 링크 사이트를 참조 바랍니다. 바티칸의 전경및 뜰, 그리고 여러 석상들 고대 종교 상징 체계에서 뱀은 인류의 정신에 묻어 있는 심리적 어둠이다. 그 어둠에 휘둘리는 역사, 그 어둠을 몰아내는 역사가 바로 고대의 종교사다. 신탁에 따르면 아르고스 왕 아크리시오스는 외손자의 손에 죽을 팔자다. 아크리시오스는 외손자의 탄생을 원천 봉쇄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서 딸 다나에를 청동탑에 가두었다. 아랫배에 사람의 씨앗을 품은 남성은 다나에에게 접근할 수 없다. 하지만 금기는 원래 깨어지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제우스는 황금 소나기로 둔갑, 청동탑으로 숨어들어 다나에를 범한다. 다나에는 처녀의 몸으로 수태한다. 이제 아크리시오스는 어떻게 할 것인가. 신화를 즐겨 읽는 독자들은 벌써 짐작할 것이다. 다나에 공주는 틀림없이 ‘장차 외조부를 죽이게 될 아들’을 낳을 것이고, 외조부 아크리시오스는 딸과 외손자를 유기한다.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신화는 이런 얼개를 지닌다. 독자들의 짐작은 크게 빗나가지 않는다. 다나에는, 제우스의 씨앗으로 아들을 낳는데, 이 아들이 바로 후세 신화의 한 원형이 되는 페르세우스다. 아기 페르세우스는 ‘태어나서는 안 될 목숨’으로 태어난다. 아기 페르세우스에게 아크리시오스의 박해가 가해지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다. '태어나선 안될 아이'모세와 닮아 아크리시오스는 딸과 외손자를 죽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크리시오스는 이들을 죽이지 않는다. 없애 버리지 않는다. 딸과 외손자를 죽여 버리는 순간, 없애 버리는 순간 신화도 죽는다. 갈등의 싹을 잘라 버리면 신화는 커지지 않는다. 페르세우스 신화가 수천년의 역사를 가로지르고 오늘날의 바티칸에 대리석으로 우뚝서 있을 수 있는 것은 페르세우스 신화의 갈등이 인류의 보편적인 갈등의 대리 체험일 수 있기 때문이다. Museum Collection: Museum of Art, Rhode Island School of Design, New York, USA Catalogue No.: RISD 25.084 Beazley Archive No.: 208348 Ware: Attic Red Figure Shape: Lekythos Painter: Attributed to the Icarus Painter Date: ca 480 BC Period: Late Archaic / Early Classical SUMMARY Danae and her young son Perseus set adrift at sea in a chest. NOTE This image is a montage of two photos of the vase. 아크리시오스는 부하들에게 조각배를 하나 만들게 하고, 다나에 모자를 그 조각배에 태워 난바다로 띄워 보낸다. 말하자면, 아크리시오스 자신의 시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으로, 앎이 미치지 못하는 곳으로 유기한 것이다. 눈밝은 독자는 아기 페르세우스의 모습에서 아기 모세의 모습을 읽을 것이다. 이집트 왕은 히브리 산파들에게 명을 내린다. “히브리 여인이 해산하는 것을 도와줄 때 사타구니를 보고 아들이거든 죽여 버리고 딸이거든 살려 두어라…. 히브리인들이 계집아이를 낳으면 살려두되, 사내아이를 낳으면 모두 강물에 집어넣어라.” 구약성서 ‘출애굽기’에 따르면 레위 가문의 한 남자가 같은 레위가문의 여자를 아내로 맞아 사내 아이를 낳았는데 너무 잘 생겨서 석달동안을 숨겨서 기르다 더 숨겨둘 수 없게 되자 왕골 상자를 얻어다가 역청과 송진을 바르고 그 속에 아기를 뉘어 강가 갈대숲 속에 놓아둔다. 레위 가문 출신의 어머니로부터 나일강에 유기되는 이 아기가 누구인가. ‘태어나서는 안되는 아이’, 히브리인들의 예언자 모세다. '운명의 힘'은 쉬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에서 고대도시 테바이로 가자면 험산 기타이론을 넘어야 한다. 그리스 인들은 이 산을 ‘아기 영웅이 버려지는 산’이라고 부른다. ‘태어나서는 안되는 아이’오이디푸스도 어린시절에 이 산에 버려진다. 하지만 버려진다고 해서, 유기된다고 해서 운명의 여신들 손길이 유예되지는 않는다. 태어나서는 안되는 아이 오이디푸스는 이 ‘버려지는 운명’을 극복하고 기어이 테바이를 쑥대밭으로 만드는 비극의 주인공이 된다. 그러므로 아기 페르세우스를 유기하는 아크리시오스, 아기 모세를 유기하는 레위 가문출신의 어머니, 아기 오이디푸스를 유기하는 아버지 라이오스는 모두 ‘귀막고 방울 도둑질하는(엄이도령·掩耳盜鈴)’자들이다. 운명의 방울소리는 그들 귀에만 들리지 않을 뿐이다. 아기 페르세우스와 다나에를 태운 조각배는 멀리 퀴클라데스 제도(諸島)에 딸린 세리포스 섬까지 흘러가 한 어부의 그물에 걸리는데, 이 그물 임자의 이름은 딕튀스다. ‘그물 당기는 자’라는 뜻이다. 이 딕튀스는 세리포스 왕 폴뤼덱테스의 쌍둥이 아우다. 따라서 이 섬나라의 왕제(王弟)에 해당한다. 왕제가 해변에서 그물질이나 하고 있는 걸 기이하게 여기는 이가 있을지 모르겠다. 쌍둥이 형제가 한 왕좌 아래서 우애를 나누기는 어려운 노릇이다. 쌍둥이 형제 중 하나뿐인 왕좌에 오르는 자는 그 아우나 형에게서 저 자신의 그림자를 보는 법이다. 따라서 해변에서 그 물질이나 하는 딕튀스는 그래도 목숨만은 부지하고 있으니 운이 좋은 셈이다. 하물며 그형의 이름이 ‘폴뤼덱테스’임에랴. ‘폴뤼덱테스’는 ‘많이 받아들이는 자’라는 뜻이다. ‘폴뤼덱테스’라는 이름은 저승 왕 하데스의 별명인 ‘폴귀데그몬(많이 받아들이는 자)’을 상기시킨다. 이제부터 펼쳐지는 영웅 페르세우스의 운명은 그 개인의 운명이 아니다. <이윤기 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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