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이 본 사후세계
작성자 이복근 (211.♡.20.43)
죽음 너머 '또다른 삶'이 있다

죽음 너머 무엇이 있는가? 모든 종교의 특징은 이 물음에 대한 답을 마련하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이 물음에 대한 답을 마련하고 있지 않으면 종교가 아니다. 내세관(來世觀)은 종교의 구성 요건 중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거의 모든 종교는 죽음 너머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삶,내세에서의 삶을 상정한다.그 삶은 이승에서의 삶과는 매우 다르다.

하지만 그 삶에 대한 상상력은 이승에서의 삶을 그 씨앗으로 한다. 따라서 그것은 이승의 삶과 매우 흡사한 것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죽음은 또 하나의 삶’이라는 형용 모순이 발생한다.

포이에르 바흐의 주장에 따르면, 어떤 종교가 되었든, 그 종교가 드러내는 모든 종교적 요소는 인간의 고민이나 원망(願望)의 관념적 반영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고민이나 원망을 관념적으로 반영하고자 하는 욕구가 없으면 종교적 표현은 성립하지 않는다.

따라서 특정 종교가 드러내는 내세관은 ‘죽음 너머의 삶’이다. 그것은 ‘삶 너머의 삶’이기도 하다. 그 삶을 읽는 일은 곧 ‘인간이 살고 싶어하는 죽음 너머의 삶, 삶 너머의 삶’을 읽는 일이다. 그것을 읽는 일은 가능한가? 종교가 인간의 ‘반영’이라니 가능하지 않겠는가?

염라대왕나라로 데려가는 '저승차사(差使)'

우리에게 죽음이란 무엇인가? 우리의 사후 세계는 불교의 사후 세계를 아우른다. 우리의 독창적인 사후 세계는 불교라고 하는 거대 종교의 사후 세계를 흡수했거나 흡수당한 셈이다. 특정 민족의 상상력이 빚어낸 독창적인 세계는 끊임없이 이웃 민족의 독창적인 세계를 흡수하거나 그 세계에 흡수당하는 속성이 있다. 신화의 세계가 세월이 지날수록 넓어지고 깊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기독교의 내세관이 침윤하기 이전의 우리 조선인들에게 죽음은 염라대왕, 혹은 염라노자(閻羅老子, Yama raja)의 나라로 가는 일이다. 염라대왕은 명계(冥界), 즉 저승을 다스리는 열 대왕 중의 하나다. 우리가 이 염라대왕을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이분이 우리가 죽기 전에 한 일을 선악의 잣대로 심판하기 때문이다.

이분에게는 18명의 장관(將官)과 8만 옥졸이 딸려 있다. 이분이 생전의 선악을 심판하는 것은, 권선징악의 본을 보이기 위해서다. 명계에는 이분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아홉 대왕이 더 있다. 인간의 죽음을 집행하는 것은 이 열 대왕의 심부름꾼들인 ‘시왕차사(十王差使)‘다. 우리가 ‘저승차사’라고 부르는 것이 바로 이들이다.

저승 차사는 죽은 자의 영혼을 명계로 데리고 가되 그냥은 데리고 가지 않는다. 이들도 먹어야 하고 마셔야 한다. 이것이 바로 상가에서 차려내는 ‘사자 밥’, 혹은 ‘졸밥’이다. 이들에게도 명계까지의 여행 비용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노잣돈’이다.

저승 차사를 따라 명계로 가자면 세 개의 여울을 건너야 한다. 이것이 바로 삼도천(三途川)이다. 이 세 여울의 물살은 각기 다르다. 생전에 지은 업(業)이 많으면 많을수록 물살이 센 여울을 건너야 한다. 그냥 걸어서 건너기도 하고 소가죽 배로 건너기도 한다. 삼도천 건너는 소가죽 배에는 밑창이 없다. 영혼은 무게가 없기 때문이다. 사공은, 있는 경우도 있고 없는 경우도 있다.

이 삼도천 가에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기다리고 있다. 이들은 여울 가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지나가는 영혼의 옷을 벗긴다. 염라대왕 앞에서, 생전에 한 일에 따라 심판을 받는 것은 이 삼도천을 건넌 다음의 일이다. 명계는, 이승과는 모든 것이 거꾸로 된 세계다. 명계의 혼령은 숟가락질을 거꾸로 한다. 혼령을 왼손잡이로 상정하고 제삿상에 숟가락을 놓는 것은 이 때문이다.

망자(亡者)입에 동전한닢'배삯'으로 물려줘

우리가 ‘서양 문화의 원류’ 가운데 하나로 두루 승인하는 고대 그리스 신화의 사후 세계는 어떤가? 만일에 공통된 요소가 있다면, 그리스 신화를 ‘보편적인 신화’라고 불러도 좋지 않겠는가?

그리스 신화의 염라대왕은 저승 왕 하데스다. ‘하데스’라는 말은 ‘보이지 않는 자’, 혹은 ‘보이지 않게 하는 자’라는 뜻이다. 하데스가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그가 ‘퀴네에’라고 하는, 도깨비 감투와 비슷한 장신(藏身) 투구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독자들이 잘 알게 되었을 테지만 하데스는, 신화 세계의 12신(왕) 중, 저승 세계를 다스리는 신(왕)이다. 명계의 시왕, 즉 열 대왕에게 시왕차사가 있듯이 그에게도 차사가 있다. 죽음의 신 ‘타나토스’와 잠의 신 ‘휘프노스’가 바로 하데스의 차사다. 그리스 인들에게 죽음이란, 하데스의 나라로 가는 일이다. 염라대왕과는 달라서 하데스는 직접 혼령을 심판하지 않는다. 그에게는 라다만튀스를 비롯한 세 심판관이 딸려 있다. 이들이 생전의 선악을 심판하는 것은 권선징악의 본을 보이기 위해서다.

타나토스와 휘프노스가 망자의 혼령을 하데스에 데려다 놓으면, 혼령은 혼자서 구천(九泉)의 아홉 여울을 건너야 한다. 말하자면 ‘통곡의 강’, ‘시름의 강’, ‘증오의 강’, ‘망각의 강’을 차례로 건너야 하는 것이다. 아홉 여울의 하나인 아케론 강에는 뱃사공이 있다.

‘카론’이라고 불리는 이 뱃사공은 배삯으로 동전 한 닢을 받는데, 이 배삯을 받지 않고는 절대로 혼령을 건네주지 않는다. 그래서 그리스 인들은 죽은 사람의 입에다 동전을 한 닢 물려 떠나 보낸다. 이 풍속은 기독교식 장례식에서까지도 지켜진다. 기독교인들이 기를 쓰고 말리면 나이든 사람들은 그들 몰래 망인의 입에 동전을 물려준다.

그리스 인들도 죽음을 삶의 끝으로 보지 않는다. 그리스 작가 카잔차키스의 소설 ‘미칼레스 대장’에 죽음을 삶의 끝으로 보지 않는 그리스 인들의 내세관 한 자락이 감동적으로 그려져 있다.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노인에게 한 아낙네가 신 한 켤레를 들고 다가가 다음과 같이 말하는 대목이다.

“우리 아이는 신 벗고 물에서 놀다가 빠져 죽었는데요, 어르신, 그 애에게 이 신 좀 전해 주세요. 저승 땅을 맨발로 다녀야 하니 발이 좀 아플까요.”

저승-이승 넘나드는 하데스의 아내

우리에게 저승은 일도불귀(一到不歸)의 땅, 한번 이르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땅이다. 고대 그리스 인들에게도 하데스의 나라는 일도불귀의 나라다. 하지만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중국 한나라 시대 사람 동방삭(東方朔)이 서왕모(西王母)의 천도 복숭아를 훔쳐 먹어 염라대왕의 부름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고 하듯이, 그리스 신화에도, 저승 차사인 타나토스를 속임으로써, 혹은 윽박지름으로써 장수를 누린 인간들이 있다.

하데스의 나라를 다녀오는, 테세우스, 헤라클레스, 오르페우스 같은 인간들도 있다. 하지만 여느 인간들에게 하데스의 나라는 여전히, 한번 이르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땅이다. 그래서 여느 인간은 하데스의 호명(呼名)을 받으면 가슴이 천갈래 만갈래로 찢어진다.

하지만 그리스 신화에는 ‘극복의 플랜’이 섬세하게 마련되어 있다. 하데스 옆에는 하데스의 아내, 즉 저승 왕비 페르세포네가 있다. 페르세포네는 1년의 반은 하데스와 저승 땅에 머물고, 나머지 반은 어머니 데메테르와 머문다. 데메테르는 땅의 여신, 곡식의 여신이다. 그 딸인 페르세포네는 씨앗의 여신이다. 곡식의 여신과 씨앗의 여신은 삶의 여신들이자 죽음의 여신들이다.

우리가 데메테르 여신이 베풀어준 것을 먹는다는 것은 곧 죽이는 일이다. ‘먹음’은 곧 ‘죽임’이다. 씨앗을 뿌리는 일도 씨앗을 죽이는 일이다. 하지만 씨앗은 스스로 썩지 않으면 땅 위로 싹을 밀어올릴 수 없다.여기에서 부활의 신화가 싹튼다.

그렇다면 불교 신화권, 힌두 신화권 혼령들에게는 희망이 없는가? 있다. 윤회전생(輪回轉生)이다.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니다.

<이윤기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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