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인테르 작: '아스클레피오스의 방문'(1880) 런던, 테이트 미술관
고대 사람들은 질병의 발생은 정령(精靈) 또는 악마 같은 초자연적인 것에 의해서 야기되는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이런 초자연적인 마력(魔力)을 극복하여 몸 밖으로 쫓아낼 수 있는 힘은 오로지 전지전능한 힘을 지닌 신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래서 어느 민족을 막론하고 의약의 창설자는 전지전능한 힘을 지닌 신이라 믿고 의신으로 모셨다. 따라서 이 세상이 대부분의 문화민족들은 자기 민족에게 처음으로 의술(醫術)을 전수했다는 의신(醫神)을 모시고 있다.
▲ 문국진(고려대 명예교수·학술원 회원)
그리스의 경우 신화시대 의술의 신인 아폴론에게는 아스클레피오스(Asclepios)라는 아들이 있었다. 우선 그의 출생을 보면 좀 색다른 데가 있다. 아폴론과 처녀 코로니스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아폴론은 애인 코로니스가 아기를 가졌다면 다른 사내의 아이를 잉태한 것으로 착각하고 멀리서 활을 쏘아 코로니스를 죽였다.
아폴론이 뒤늦게 그것이 자기아이라는 것을 알고 달려갔을 때 코로니스의 시신은 화장터에서 까맣게 그을리기 시작하는 때였다. 아폴론은 헤르메스 신으로 하여금 코로니스의 뱃속에 든 아기를 살려내게 하고는 아기를 당시의 용한 의사이자 지혜로웠던 케이론에게 보내 의술을 배우게 하였는데, 케이론은 머리는 사람이고 몸은 말인 인두마신(人頭馬身)으로 전해진다. 케이론은 뒷날 이아손, 헤라클레스, 아킬레우스 같은 영웅도 가르친 현자로 유명하다. 아스클레오피스도 케이론의 가르침을 받아 유능한 의사가 되었다.
옛날 그리스에서는 말은 농사에 쓰였을 뿐만 아니라, 경쾌하게 타고 다니던 교통수단이었고, 전쟁이나 수렵에 불가결한 가축이었다. 전쟁이나 수렵에 관련되어서 생긴 질병의 치료라는 것은 지금의 내과적 질병의 치료라기보다는 오히려 외과적 질병이었을 것이며, 따라서 케이론이 가르쳐 주었다는 의술도 외과치료였을 것으로 추측하는 이가 많다.
아스클레피오스에게 전수했다는 의료기술의 내용에 관해서는 그들의 신화에는 명확하게 기록된 것이 없다. 그러나 간접적인 기록을 보면 확실히 외과의학이었던 모양이다. 즉 에우리피로스가 화살을 맞아 상처를 입었을 때에 파타룩스가 몸에 박힌 화살을 뽑고서 상처를 깨끗이 씻은 다음 진통제를 주면서 붕대를 감았다는데, 이 파타록스의 치료법은 아킬레스에게서 배운 것이며, 아킬레스는 그것을 케이론에게서 배웠다고 되어있다. 아스클레피오스는 에피다우로스(Epidaurus)에다 요즈음의 의과대학 겸 부속병원 비슷한 신전인 아스클레페이온을 세우고 의술을 가르치는 한편 환자를 진료하였다. 어찌나 빠르게 치료하고 용하게 병을 고쳤던지 '아스클레피오스는 죽은 사람도 능히 살려 낸다'는 소문이 날정도 이었다.
아스클레피오스가 신통력을 지닌 의신이라는 소문 때문에 사람들만이 아니라 신들도 아스클레페이온 을 찾았다고 하는 데 이러한 것을 그림으로 잘 표현한 것이 있다. 영국의 화가 포인테르(Sir Edward John Poynter, 1836-1919)의 작품 '아스클레피오스의 방문'(1880)을 보면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비너스)'가 발에 부상을 당하자 자기의 몸종격인 삼미신(三美神)을 다리고 아스클레피오스를 찾았다.
이른바 환자가 의사를 찾아 가는 데 그림에서 보는바와 같이 실오라기 하나도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간다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다. 그러나 그리스신화에서 사랑의 여신의 상징은 언제나 나체라는 것을 이해한다면 화가가 왜 아프로디테와 삼미신을 나체로 표현하였는가를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아프로디테는 조금도 부끄러워함 없이 아스클레피오스 앞에서 자기의 아픈 곳을 호소하고 그는 일단 시진(視診)을 하고 있다.
아스클레피오스의 의술 학교는 뒷날 수많은 명의를 배출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명의는 오늘날 '의성(醫聖)으로 불리는 히포크라테스이다. 모든 의과대학 학생들이 의사가 될 때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여 의사는 히포크라테스를 본받아야 함을 맹서할 정도이인데 이는 아스클레피오스의 제자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