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곁의 아프로디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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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이복근 (211.♡.20.21) | 작성일 | 08-03-18 16:16 | ||
아프로디테는 우리 안에, 우리 곁에 있다. 우리가 다만 모르고 있을 뿐이다. ‘미로의 비너스’라고 불리는,상반신을 벗고 서 있는, 팔 없는 여신상이야 누가 모르랴. 오른쪽 다리에 몸무게를 싣고 왼쪽 무릎을 조금 구부려 좌우의 대칭을 살짝 무너뜨린 채 서 있는 여신상, 8등신 미녀의 본보기가 되어 있는 이 여신상이 바로 아프로디테 상이다. 이 여신상이 ‘미로의 비너스’라고 불리는 것은 부당하다. ‘미로’는, 번역 과정에서 생긴 ‘밀로스 섬’의 와전이다. 여신의 로마 이름은 ‘베누스’. ‘비너스’는 영어 이름일 뿐이다. 따라서 ‘미로의 비너스’는 ‘밀로스 섬의 아프로디테’라고 불러 주어야 마땅하다. 겨울이 깊어가면 봄이 그만큼 가까워진다니 곧 4월이 올 터이다. 4월은 ‘에이프릴(April)’이다. ‘에이프릴’이라는 말은 라틴어 ‘아프릴리스(Aprillis)’에서 왔다. ‘아프로디테의 달’, 사랑의 달이라는 뜻이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시인 박목월이 노래한 ‘4월의 노래’ 첫마디에 벌써 사랑의 예감이 선연하다. 시인에 따르면 아프로디테의 달 4월은 아름다운 사랑의 달,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는, ‘눈물 없는 무지개 계절’이다. 그러나 영국 시인 T S 엘리엇은 이렇게도 노래한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잠시잠깐 생육하다가 거품같이 스러져 갈 것들이 태어나는 4월을 ‘잔인하게’ 노래했던 것을 보면 엘리엇은 무수한 것들이 들고 일어나는 4월에서 장엄한 파국의 불씨를 예감했음에 분명하다. 아프로디테의 별명은 ‘아프로디테 포르네’, ‘음탕한 아프로디테’라는 뜻이다. ‘포르노그라피’ 혹은 ‘포르노’라는 말은 여기에서 왔다. 아프로디테는 그런 여성에게는 물론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의 마음 바닥에 산 채로 꿈틀거리고 있다. 아프로디테가 인류 최초의 여성 판도라에게 주었던 것이 무엇이었던가? 꿀물 같은 교태와 나른한 그리움과, 귀 가진 것의 몸과 마음을 바닷말처럼 흐느적거리게 하는 한숨이었다. 그러나 아프로디테가 아름다운 사랑의 여신인 것만은 아니다. 아프로디테는 저승의 여신과 애인 아도니스를 공유하던 여신이기도 하다. 따라서 파국의 불씨를 예감하지 못한 채 신격(神格) 복잡하기 짝이 없는 이 여신에게 대책없이 휘둘리다가는 신세 들어먹고, ‘아프로디테는 가장 잔인한 여신…’이라고 노래하는 수가 있다. 아프릴리스, 에이프릴, 아프로디테, 포르노, 거품…. 아프로디테라는 말은 ‘아프로스(거품)에서 태어난 여자’라는 뜻이란다. 허망하다는 뜻이겠다. ■아프로디테의 탄생 살아 있는 것들의 사랑을 북돋우는 아프로디테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라노스(하늘)의,시도때도 없이 울근불근 발기하는 ‘뿌리’에서, 더 정확하게 하자면 뿌리가 잘리자 거기에서 용솟음친 피에서 유래한다. 우라노스가 뿌리 잘린 사연은 이렇다. 우라노스의 아내는 당연히 가이아(대지)다. 우라노스와 가이아가 교합하여 아들 여섯 형제와 딸 여섯 자매를 낳으니 이들이 바로 ‘티탄’, 즉 몸피가 큰 ‘거신(巨神)’들이다(미국의 대륙간탄도탄 ‘타이탄’, 영국의 호화 여객선 ‘타이타닉’의 이름은 여기에서 유래한다). ‘해’ ‘달’ ‘바다’ ‘시간’ 등이 바로 티탄이다. 그런데 우라노스와 가이아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중에는, 대장장이질의 명수인 귀클롭스(외눈박이 거인) 3형제와 싸움질의 명수인 헤카 톤케이레스(百手巨人) 3형제처럼 성질이 포악한 아들도 있었다. 우라노스는, 당장 쓰일 데가 마땅하지 않은 이 괴망한 자식들을 가이아의 품속에 있는 타르타 로스(무한지옥)에다 가두었다. 가이아는, 감당도 못하는 주제에 자꾸 자식을 낳으려는 우라노스가 못마땅했을 법하다. 그래서 가이아는 우라노스의 ‘뿌리’를 잘라버리기로 하고, 몸속을 흐르는 무쇠 맥에서 무쇠 덩어리를 취하여 큰 낫을 한 자루 만든 다음 아들들에게 물었다. ‘누가 아비의 뿌리를 잘라 후환을 없이하겠느냐?’ 시간의 신 크로노스가 나서서 아비 우라노스의 뿌리를 댕겅 잘랐다. 그러자 피가 용솟음쳤는데,그 일부가 대지를 둘러싸고 흐르던 바다에 떨어졌다. 그런데 이 피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피라는 것은 바닷물에 풀려 흔적도 없이 사라져야 마땅한데 그 피만은 한 덩어리의 거품이 되어 오랜 세월 바다 위를 떠다니게 된 것이다. 15세기 이탈리아 화가 보티첼리의 작품 중에 ‘베누스의 탄생’이라는 걸작이 있다. 바로 아프로디테의 탄생을 그린 그림이다. 그림의 중앙에 거대한 조개껍질을 밟고, 벌거벗은 금발 미녀가 있다. 아프로디테다. 왼쪽에는 날개 달린 사내가 하늘에 뜬 채, 볼을 잔뜩 부풀리고 아프로디테를 입김으로 불고 있다. 바로 서풍(西風)의 신 ‘제퓌로스’다. 아프로디테 오른쪽에서 옷을 들고 다가서는 여성이 있다. ‘호라이’ 세 자매 여신의 맏이, 봄(!)의 여신 탈로다. ‘호라이’는 ‘계절’, 또는 ‘때’라는 뜻이다. ‘시간’이라는 뜻을 지닌 영어 단어 ‘아워(hour)’는 여기에서 유래한다. 왜 하필이면 조개를 타고 상륙하는가? 아프로디테만 조개에 실려 해변으로 밀려온 것은 아니다. 중국의 민담에 나오는 ‘패희(貝姬)’, 즉 ‘조개 계집’이나 ‘나희(螺姬)’, 즉 ‘고둥계집’도 각각 조개 혹은 조개와 아주 흡사한 소라고둥에서 태어났다. 조개는 전세계에 폭넓게 분포하는 보편적인 여성의 상징이다. 아프로디테가 상륙한 섬은 ‘퀴프로스’, 오늘 날의 ‘사이프러스’다. 사이프러스 사람, 즉 ‘사이프리언(Cyprian)’은 ‘음탕한 여자’ ‘웃음 파는 여자’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아프로디테적(Aphrodisiac)’이라는 말은, 너무 자주 포르노 배우가 되고 싶어하는, 따라서 매우 색정적인 상태를 뜻한다. 이제부터 그 세계를 펼쳐보이게 되겠지만 아프로디테는 살아있는 것들을 번성하게 할 때는 건강한 성욕을 북돋우는 따뜻한 여신이면서도, 술의 신 디오니소스가 그렇듯이, 굉장히 위험한 측면을 지닌 부정적인 여신이기도 하다. 아프로디테는 아름다운 여신인 동시에 그 위험한 측면 때문에 기독교에 의해 거의 소독당하다시피 한 여신이다. 사도 바울이 ‘코린토서’를 쓴 것은 그가 아테네 남쪽에 있는 도시 코린토스에 오래 머물렀기 때문이고, 오래 머물렀던 것은 코린토스가 아프로디테 숭배의 중심지 중의 하나였기 때문이다. 여신전 제니(祭尼)는, 나그네에게 몸을 파는 신전 창니(娼尼)를 겸했다.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을 시절의 코린토스는, 사랑의 여신전에서 신전 창니와 신음(神淫)을 즐길 수 있는 방탕한 사내들의 천국 같은 곳이었다. 그는 그 악습을 뿌리 뽑고자 했다. 오죽했으면 로마인들이, 신세타령하는 친구를 이런 말로 위로했을까? 살다 보면 그런 수도 있는 거지 뭐…. ‘Non cuivis homini contingit adire Corinthum(누구나 다 코린토스로 갈 수 있는 것은 아니잖겠어.)’ -이윤기의 신화 기행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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