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영 시인의 발로 읽는 열하일기]망국의 역사 초래한 권력암투의 현장
작성자 이복근 (211.♡.22.204)
(7) 피서산장(하) - 청나라 역사의 속내 들여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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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의 마지막 권력자 서태후의 유품 전시관은 담박경성전 건물 옆 서쪽에 세로로 놓여 있다.

건륭제 총애 받은 간신 화신 권력 남용 거대한 부 축적
아들 대신 47년간 섭정한 서태후 사욕 채우려 폭정 거듭
탐욕·허영 가득한 유품들 담박경성전 옆 전시관에 진열


연암이 열하에서 벌어진 축하 행사를 보고 쓴 <만년춘 등불 구경>과 <매화포 구경>이란 글은 마치 그 풍경을 눈앞에서 보는 듯하다. 그만큼 묘사력이 뛰어나다는 뜻이다. 이 글은 건륭제 칠순잔치의 화려함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지만, 등불놀이는 산장 밖에서, 매화포 놀이는 산장 안 정원에서 행하여졌다.

만년춘 등불놀이는 피서산장 밖에 있는 별궁에서 천여 명의 관리들이 보는데서 벌어졌다. '만년춘'이나 '수복' '천하태평'이란 글자를 보여주면서 불을 태우는 것으로, 황제의 만수무강과 나라의 태평을 기원하는 일종의 송축 행사이다. 이 행사에 대해서 연암은 '이것은 잠시 동안에 하고 마는 놀음인데도, 기율이 이 같이도 엄격하다. 만약에 이런 법으로 군대가 전쟁터로 나간다면 세상에 누가 감히 다칠 것인가? 그러나 천하의 태평은 도덕에 있는 것이요, 규율에만 있는 것이 아닐진대 더구나 이따위 잡극의 규율이 천하의 태평에 무슨 도움이 될 것이랴?'라고 날카로운 비평을 가한다.

그러나 매화포 놀이(지금의 불꽃놀이)에 대해서는 주관적인 논평 없이 본 그대로를 말하고 있다. 그리고 정사 박명원이 본 매화포에 대한 이야기를 인용한 것으로 보아 연암은 그 행사에 참석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피서산장 안에서 벌어진 행사를 직접 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피서산장 안 정원에서 쏘아올린 매화포가 밤하늘과 호수를 물들이는 장관을 보았더라면, 문학적 감수성이 예민한 연암 같은 인물이 주관적 논평 없이 가만히 있었겠는가.

그렇다면 나는 이 두 편의 글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그것은 피서산장이 간직하고 있는 역사적 사실, 즉 속내를 말하고 싶은 것이다.

연암을 비롯한 조선 후기 실학파들이 주장한 '북학'은 앞선 청나라의 문명을 배우고자 하는데 있다. 그 모델이 된 것이 바로 강희제로부터 건륭제에 이루어진 문화와 문명들이다.

특히 연암이 본 건륭제는 그 자신이 4만2000수 이상의 시를 남기고, 그림을 비롯한 예술 작품에 글을 남길 만큼 문화·예술과 <사서전고>라는 수천 권의 책 편찬을 지시할 만큼 역사적 안목이 넓었다. 거기에다 만주 문화에 대한 비판을 혹독하게 탄압한 '문자옥(文字獄)'도 일으킬 만큼 냉혹함도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도 65세가 넘어 교활하고 부패한 관리인 화신과 같은 인물을 등용하고, 서구 문물을 봉쇄하고 중화 문화가 중심이라는 환상에 빠져 들고 말았다. 바로 이 시기에 연암이 열하에 왔고 화신이란 그 문제의 인물도 만난 것이다.

연암의 기록대로 화신은 건륭제의 총애를 받아 황제가 죽을 때까지 권력을 남용하여 부를 축적했다. 건륭제 사망 후 화신은 처형되었는데 은 약 2만2400t(당시 은이 화폐로서 최고의 가치)에 해당하는 그의 재산이 몰수되었다. 합리성을 잃은 봉건적이고 절대적 권력은 이 같은 인물을 양산시키면서 청나라를 쇠퇴시키는 원인이 되었다.

그런 인물이 또 있다. 문명이 근대화 되어 가는 시대의 변화와 개방에 대해 무지하고, 나라와 백성보다는 자기의 이기적인 욕망으로 보수주의자와 개혁주의자를 교묘하게 이용했던 인물이 바로 피서산장 안에 있다. 그가 바로 서태후이고 그의 유품이 피서산장 담박경성전 옆 건물에 놓여 있다.

서태후, 누가 뭐라고 평가하던 그녀는 청나라의 문을 닫게 한 최후의 권력자이며, 피서산장의 마지막 주인이다. 중국에서 오랫동안 산 경험을 바탕으로 한 소설 <대지>를 쓰고 노벨문학상을 받은 미국 작가 펄벅 여사가 쓴 소설 <연인 서태후>(소설이지만 역사적 실화를 바탕 함)에서 피서산장에서 일어난 사건이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

그 내용 중 가장 긴장감을 자아내는 것이 피서산장에서 벌어진 권력 다툼이었다. 서태후의 남편 9대 함풍제는 젊은 시절부터 아편 중독과 여성 편력으로 인해 유약하고도 무능했다. 그는 태평천국의 난으로 정국이 불안하자 등극한지 2년만에 열하의 피서산장으로 피신왔다가 바로 이곳 담박경성전에서 죽는다.

이 기회를 이용하여 권력 다툼이 일어나는데 서태후는 자기 자식(후에 동치제)과 옥쇄를 먼저 차지하여 영친왕(황제의 동생)의 도움으로 숙신과 이친왕의 무리를 제거하고 섭정하게 된다. 이 모두가 피서산장 담박경성전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 후 그녀는 47년 동안 나라를 통치하면서 청을 멸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1908년 74세로 죽기 전날 영화 <마지막 황제>에 나오는, 두 살밖에 안 되는 어린 부의에게 껍데기 뿐인 나라를 물려주고 죽는다. 서태후는 북경으로 간 후 다시는 피서산장에 오지 않았고, 그 후로는 이곳은 방치되다시피 했다.

그녀의 무덤도 청대 황제의 능묘에 묻혔으나, 손전영이라는 장군에 의해 도굴되어 없어졌다. 따라서 피서산장에 남아 있는 그의 유품이 그녀가 남긴 모든 것이다.

우리 팀은 서태후의 유품전시관을 둘러보았다. 그녀가 쓰다 남긴 유품들이 형광등 불빛에 빛나고 있다. 그러나 그 느낌은 왠지 싸늘한 빛을 던지고 있다. 가이드가 서태후 머리를 빗기는 궁녀가 머리카락 하나라도 빠지게 하면 참수시켰다든지 주름살을 없애고 사진촬영 편집을 해준 일본 사진사에게 엄청난 거액을 주었다든지 하는 이야기 때문이 아니다. 군방비를 몽탕 털어 이화원을 지었다는 사실 때문만도 아니다.

중·일 전쟁으로 백성들이 도탄에 빠지고 거리에 죽은 시체가 가득한데도 불구하고 60세 생일 축하연을 이화원에서 하지 못함을 안타까워했다는 무서운 이기심과 탐욕, 허영 때문이다. 역사는 반드시 의로운 것만을 남기고 기록하는 것은 아니다. 지도자가 어떠해야 된다는 것을 반면교사로서 서태후가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피서산장은 단지 피서를 하기 위해서 지은 별장이 아니라 청나라 통치자들이 이민족을 견제하면서 청나라를 번창시키고자 온갖 구상과 고민, 계략과 지혜를 만들어낸 청대 문화의 집합소였다.

그러나 이러한 통치 이념으로 조성된 이곳도 건륭제 통치 후반부터 합리성을 잃고 퇴색되어 갔다. 이 후 서서히 몰락의 징조를 보이면서 말기 서태후가 통치하다 멸망해 버린다. 피서산장은 청의 흥망사를 보여주는 역사적 장소이다. 청나라 역사는 이 피서산장에서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피서산장의 역사적 속내를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그렇게 아름다운 곳만이 아닌데, 이방인인 우리들은 그 풍광에 취해 떠나는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앞으로 대한민국 지도자가 될 사람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를 그리고 그를 도와 우리나라를 이끌고 갈 집단은 어떤 이념과 사명을 가져야 하는 인물들인지를 피서산장에 대한 이해를 통하여 다시 한 번 성찰해 보아야겠다.

제갈공명이 그의 <출사표>에서 '나라에 대하여 충성된 생각을 가지는 자는 누구나 자신의 과실과 결함을 부지런히 청산하라'는 명언을 이행은 못하더라도 적어도 서태후처럼 자신과 자신의 집단적 이기심과 사욕을 앞 세워 돈과 권력으로 국민들을 우민화하고, 부정과 부패로 사리사욕만을 챙기려는 지도자만은 뽑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우리를 태운 버스는 피서산장 문을 빠르게 빠져 나간다. 어느덧 저녁 해가 승덕시를 물들인다. 그 속에서 피서산장은 어둡고도 아름다운 자태로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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