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못할 송년회
작성자 이복근 (211.♡.21.220)
▼ 박재갑 서울대 의대 교수·외과학, 전 국립암센터 원장


“인생과 고추가 가늘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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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사람들, 일을 같이하던 사람들이 모여 지난 한 해를 돌아보고 반성하자는 행사가 송년회라 알고 있다. 대부분의 송년회가 연말의 들뜬 분위기 때문에 흥청망청해지기 십상이지만, 요즘 기업 송년회 중에는 제법 ‘송년과 반성’이라는 본래의 뜻을 살린 모임이 적지 않다.

지난해 연말 프라임그룹 임원들과 함께한 송년회는 국립암센터 원장으로서 마지막 겨울을 맞는 내게 큰 의미가 있었다. 조흥은행장을 지내고 프라임그룹 고문으로 있는 위성복씨의 초청으로 참가한 이날 송년회에서 내가 맡은 ‘임무’는 지난 한 해 담배를 엄청나게 피워댄 프라임그룹 임직원을 반성하게 하는 일이었다. 프라임그룹 백종현 회장은 나를 초청하면서 “회사에 흡연자가 많은데, 이번 송년회를 계기로 많은 임직원이 담배를 끊으면 좋겠다”고 했다.

서울 메리어트호텔에서 열린 송년회장에는 300여 명의 프라임그룹 임원 및 관계사 부장급 직원 부부가 참석했다. 나는 이날 송년회를 위해 나름대로 준비를 많이 했다. 어떻게 하면 끽연가들에게서 담배를 떼어놓을 수 있을까 머리를 쥐어짜면서.

평소 나는 강연과 집필 활동을 통해 담배는 각종 암 사망 원인의 30%를 차지할 만큼 폐해가 심각하며, 청산가스 등의 독극물과 비소, 페놀 등 69종의 발암물질이 섞여 있고, 니코틴은 아편 못지않은 중독성이 있다고 강조해왔다. 하지만 이런 딱딱한 이야기만으로는 그날 내게 주어진 임무를 완수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송년회에 내가 온다는 소문을 들은 프라임그룹 임직원은 송년회장에 들어오기 전에 열심히 담배를 피우고 들어온 눈치였다. 행사장 밖에서 담배를 피우다 나와 눈이 마주친 직원들은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어 했다. 그런 그들에게 담배에 대한 의학적 소견을 들려줘봤자 ‘말발’이 먹힐 것 같지 않았다. 더구나 이날의 만남은 여느 금연(禁煙) 강연회가 아니라 임직원이 부부동반으로 모여 덕담을 나누고 여흥을 즐기는 송년회 자리가 아닌가.

그래서 나는 ‘극약처방’을 하기로 했다. 송년회에 참가한 부인들을 표적으로 삼은 것이다. 대뜸 “담배를 피우면 남성기능이 저하돼 30∼40대에 발기부전이 찾아올 가능성이 2배 높아질 수 있다”고 겁을 주며 부인들을 쳐다봤다. 성기능 장애로 부부싸움을 하는 장면이 담긴 영상물도 보여줬다. 한 발 더 나아가 한껏 발기된 ‘고추’와 담배에 찌들어 빈약해진 ‘고추’ 사진도 보여줬다. 장내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송년회장에서 갑작스레 ‘고추’ 사진을 본 부인네들의 표정이 어떠했겠는가. 아마 그들의 머릿속엔 ‘남편과의 잠자리 빈도가 해마다 줄어드는 원인이 바로 담배였구나’ 하는 생각이 떠올랐을 것이다.

“성관계를 가질 때는 에어로빅을 할 때보다 2배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에 흡연으로 혈관이 좁아진 사람은 성생활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말도 들려줬다. 송년회가 끝나고 집에 돌아간 후에 부인들이 남편들을 공격할 수 있는 온갖 무기를 손에 쥐어준 셈이었다.

강연을 마치고 자리에 와 앉으니 한 직원이 일부러 부인 들으라는 듯 “박사님, 저는 그래도 굵고 짧게 살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도 다른 임직원에게 다 들리도록 큰 소리로 대꾸해줬다.

“담배를 피우면 인생이 굵어지는 게 아니라 ‘고추’가 가늘고 짧아져요.”

장내가 떠나갈 듯 웃음이 터져 나왔다. “흡연하면 절대로 굵게 살 수 없다. ‘고추’가 가늘어지니 가늘게 살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젠 의학이 발달해 마음대로 짧게 살 수도 없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후일 백종현 회장이 송년회 뒷이야기를 해줬다. 많은 임직원이 그날 집에 들어가 부인에게 혼쭐이 나고 꼼짝없이 담배를 끊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 회사의 경쟁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그날 송년회가 프라임그룹 애연가들에겐 더없이 끔찍했겠지만 덕분에 올해부터 그들의 인생은 굵고 길어졌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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