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외국인 근로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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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울산의사회 (211.♡.21.15) | 작성일 | 06-11-21 10:49 | ||
서중환 울산중앙병원 원장
그는 오늘도 씩 웃는 한 줌의 미소로 응대를 하고 있었다. 매번 아침회진 때마다 아프지 않느냐는 질문 대신 입가에 웃음을 보내면 그는 더 큰 미소로써 괜찮다고 말하곤 한다. 영어라도 할 줄 알면 서툴게나마 의사전달을 할 수가 있으련만 그렇지 못하여 이렇게 서로 웃음으로서 마음을 표현한다. 하지만 오히려 서로의 얼굴 표정 하나하나에 서려있는 감정을 읽는 것만으로 더 훌륭히 의사전달이 되고도 남음이 있다하겠다. 그는 가족들과 고향을 멀리하고 목돈을 마련하고자 하는 일념으로 이역만리 먼 곳인 여기 울산에 와서 일한지 불과 한 달 남짓 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한 때 구소련연방이었다가 지금은 독립한 농업이 주산업인 나라에서 온 이른바 외국인근로자이다. 발음은 투박하지만 유창한 영어로 시끄럽게 통증을 호소하는 필리핀에서 온 A씨는 우리만 보면 퉁퉁 부은 다리를 내 보이며 다소 엄살에 가까운 애교를 부리기도 한다. 일하다가 넘어져 팔꿈치를 다쳐서 입원하였던 B씨는 우리와는 전혀 구별되지 않는 외모를 가진 중국국적의 외국인근로자였다. 역시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아 꼭 필요할 땐 종이에 간단한 한자를 몇 자 써서 주고 받음으로써 서로간에 할 말을 어렵게나마 해결하곤 하였지만 오히려 얼굴 표정 하나하나를 읽음으로써 더 훌륭하게 서로의 마음을 읽어 낼 수가 있었다. 몇 달 전 금형기기에 손이 끼는 불의의 사고로 손가락을 두개나 절단하는 안타까운 부상을 당하였던 C씨는 멀리 중앙아시아에서 온 무려 30명이 넘는 대가족을 책임진 가장이었으며, 서툴게 기계를 조작하다가 날카로운 단면에 찔려 팔뚝의 힘줄이 끊어지는 부상을 당하여 수술을 받은 D씨는 굵은 눈망울과 선이 분명한 잘생긴 얼굴의 스리랑카에서 온 아직은 앳된 외국인근로자였다. 외국인근로자들을 보는 것이 아주 흔한 일이 되어 버린 요즘 전국적으로 매년 80만명이 넘는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입국하여 상주하고 있는데(법무부 출입국관리통계연보, 2004), 각자의 소망하는 목적에 따라 매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고 산업현장 곳곳에서 일에 전념하고 있다. 이렇게 산업현장에 투입되어 일하고 있는 외국인근로자의 수는 우리가 살고 있는 여기 울산지역에만도 무려 만 명이 넘는 인원이 와서 일하고 있다. 치솟는 인건비를 견디다 못해 중국, 베트남 등지로 공장을 이전하여야 하거나 혹은 공장문을 닫을 지경에 이른 사업체들을 그나마 유지시켜 주는 것도 그들 외국인근로자들이다. 고국에 있는 수십명의 대가족을 책임지고 있는 가장으로부터 이른바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목돈을 마련하게 되면 고향에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려고 하는 야심을 가진 이도 있고, 학비를 벌기 위해서 다니던 학교를 휴학하고 온 제법 엘리트로 보이는 학생들에 이르기까지 그 목적이 다양한지라 그들이 여기에서 하는 일만으로는 그들 본연의 모습들을 정확하게 가늠할 수는 없다. 지금은 우리나라가 국민 소득수준이 향상돼 그러한 시절이 과연 있었을까 하고 여겨지지만 60~70년대는 우리 또한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외국인근로자가 되어 낯설은 먼 타국 땅에서 어려운 일 궂은 일 마다않고 열심히 일했던 역사가 있었다. 그 땐 우리나라 근로자들도 모두가 회피하는 저임금의 열악한 환경에서 고된 노동을 감수했다. 국가경제 규모가 아주 미미하던 그 시절, 달러를 벌어들여 어렵던 나라를 몸으로 도왔던 것은 바로 우리들의 아버지, 삼촌, 형, 누나들의 이야기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제 곧 세밑이 다가오면 추위만큼이나 타향살이에 지칠 그들 외국인근로자들에게 인간적인 관심이라도 살뜰하게 보여줌으로써 막대한 자본과 까칠한 외교업무를 통해서도 이룩하지 못하는 국위선양을 민간차원에서 알차게 쌓을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음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서중환 울산중앙병원 원장 [2006.11.13 23: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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