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재실과 문중 공원에 대한 생각
작성자 울산의사회 (211.♡.21.15)
황두환 의학박사·울산생명의숲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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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기 전에 문중 재실을 잘 만들어 놓고 가야 하는데 의사선생 그때까지 살겠습니까?" "영감님, 왜 재실을 꼭 지어놓고 가실 생각을 하십니까?" "죽어서 조상을 뵈려면 재실 하나라도 번듯이 지어놓고 가야 자식들도 조상을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1년에 후손이 한번 찾을까 말까 하는 재실보다 여러 사람이 함께 찾고 즐길 수 있는 작은 공원을 하나 만드는 것은 어떻습니까?"

몇 년 전 자수성가한 80대 어르신이 진찰을 받으면서 죽기 전에 해야 할 일이라고 하면서 오갔던 이야기이다. 재실보다 나무를 심어 소 공원을 만드는 것에 대해 제안했을 때 처음에는 안 된다고 하더니 다음 번에 만났을 때 그 어르신은 '공원으로 하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 그럼 나중에 국가에서 나라 땅이라고 하지 않겠냐'고 걱정했다. 그 어르신은 내 재산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담장과 선을 긋지 않으면 빼앗긴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나 보다.

국가에서 개인 사유지에 숲을 만드는 것은 절대 그렇지 않고 오히려 그 공원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어르신과 집안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할 것이고 나라에서 표창까지도 줄 것이라고 했다.

어느 문중마다 재실이 하나씩은 있다. 묘제 지낼 때 어쩌다가 한 번 찾아 갈까 말까다. 그러고는 1년 내내 굳게 닫힌 대문으로 외부인의 접근을 막고 있다. 동네에서 떨어진 곳이나 외곽지역에 떨어져서 휑하니 자리 잡고 있다. 더구나 주택과는 다른 모양이나 칠을 하고 있어 친숙하지 못하다 보니 자연 거리감을 두게 된다.

반면 울산대공원 조성을 결정한 고 최종현 회장의 경우를 보자. 당시 회사에서는 그룹이 번창하는데 도움을 준 울산에 뭔가를 해야 한다는 총수의 뜻을 받들어 무엇을 할 것인가를 놓고 여러 가지 내용을 올렸다고 한다.

그 중에는 대기업 이름의 대학, 공업탑 로터리 구조개선을 통한 상가건설, 스포츠센터, 대공원 등이었는데 최 회장님은 선뜻 시민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대공원으로 결정했다고 한다.

울산대공원은 하루에 수 천 명이 다녀가고 전국에서 대공원을 배워 가기 위해서 찾는 이들도 많다고 한다. 대공원을 직접 조성한 울산시의 공로도 인정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SK에 대해 깊이 감사하고 있다. 시민들은 감사의 수준을 넘어 회사가 어려울 때 시민들이 나서서 살려야 한다며 행동을 보여주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돌아가신 최 회장님의 높은 뜻에 존경의 마음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이같은 일은 꼭 수천억의 돈이 들어가는 대공원이 아니라도 가능한 일이다. 필자의 병원을 찾아온 환자처럼 재실을 꼭 짓고자 하는 사람이나 가문이 있다면 그 비용으로 도심의 작은 공간에 가족과 친지들이 함께 모여서 나무와 꽃을 심고 00할아버지 이름이나 혹은 집안 성씨를 딴 공원을 만들 수도 있다. 또한 가족들이 매년 한 번씩이라도 찾아와서 돌본다면 산소나 재실을 찾는 것보다 훨씬 편안하게 될 것이고 가족 간의 우애도 돈독해질 것이라 여겨진다. 이렇게 한다면 울산대공원을 조성한 대기업의 총수와 그 뜻이 다를 바가 무엇이겠는가?

소공원을 매일 이용하는 시민들은 한 집안의 노력으로 맑고 쾌적한 환경에 살아가고 있음을 고맙게 생각하고 가문의 번성을 기원하게 될 것이다. 그 집안의 문중 공원은 자손대대로 후손을 연결시켜주는 소중한 장소가 될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 환자가 큰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게 되어 문중 공원 1호의 탄생을 지켜보지는 못하게 됐다. 지금도 재실 설립을 고려하고 있는 사람이나 문중이 있다면 그 땅에 가족공원을 만들어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푸르고 아름다운 도시가 되도록 하는 것은 어떨까 제안해 본다. 작은 공간일지라도 한 집안의 할아버지와 손자가 함께 심은 나무가 자라 대대손손 남을 수 있다면 1년 내내 굳게 잠긴 재실보다 몇 배나 값지지 않겠는가.


황두환 의학박사·울산생명의숲 공동대표

[2006.10.29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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