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폴론 이야기
작성자 이복근 (211.♡.20.21)
■ 巫神 아폴론 탄생
[그림]Lucas Cranach the Elder (獨,1472-1553)◈Apollo and Di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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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론과 아르테미스는 제우스의 쌍둥이 아들딸이다. 하지만 어머니는 제우스의 정처(正妻)헤라가 아니라 레토 여신이다. 당연히 질투의 화신 헤라의 눈총을 받았을 법하다. 헤라는, 제우스와 놀아난 레토에게 해산할 자리를 제공하는 땅은 황무지로 만들어 버리겠노라고 엄포를 놓았다.

레토는 무거운 배를 앞세우고 온 그리스 땅을 다 찾아다니면서 해산할 자리 베풀어 줄 것을 애원했다. 하지만 온 그리스 땅의 지방신들은 헤라의 보복이 두려워 이를 거절했다. 온 그리스 땅을 헤매던 끝에 레토가 이른 곳이 델로스 섬이었다. 레토는 대신(大神)제우스의 자식 낳을 자리를 베풀면 새로 태어나는 신의 신전을 지어주겠다고 약속하고서야 간신히 허락을 받아내었다.
레토가 진통을 시작하자 올륌포스의 여신들은 헤라만 빼고 모두 델로스 섬으로 내려와 해산을 도우려 했다. 하지만 레토는 진통만 할 뿐 해산하지 못했다. 이치의 여신 테미스가 레토에게 그 까닭을 설명하고 해결책을 내어놓았다.

“신성혼(神聖婚)의 수호 여신 헤라가 지아비의 사랑을 입은 레토를 질투하는 것은 당연한 이칩니다. 레토가 해산하지 못하는 것은 헤라가 틀고 있기 때문입니다. 헤라는 아마 해산의 여신에게 엄명을 내려 도와주지 못하게 하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우스 신도 생각이 있어서 레토에게 자식을 끼쳤을 터이니 이들은 마땅히 태어나야 합니다.”

테미스는 금목걸이를 뇌물로 들려 무지개 여신 이리스를 해산의 여신에게 보냈다. 해산의 여신이 내려와 소매를 걷어올리자, 종려나무 둥치를 안고 진통하던 레토가 쌍둥이를 순산하니, 이들이 바로 아폴론과 아르테미스 남매다.

레토는 쌍동이에게 넥타르와 암브로시아(神食)를 먹고 마시게 했다. 그러자 탯집에서 갓 나온 ‘포이보스 아폴론(빛나는 아폴론)’이 강보를 뛰쳐나와 어머니를 향해 자신의 미래를 예언했다. “수금(竪琴)을 주세요. 제우스의 영광을 노래하게요. 활을 주세요. 어머니의 한을 풀게요. 그러면 곧 제가 제우스의 뜻을 예언하게 됩니다.”

■ 시뷜레의 운명

아폴론이 태어날 당시 파르낫소스 산 기슭 마을 델포이에는 시뷜레라는 무녀(巫女)가 살고 있어서 사람들 발길이 잦았다. 델포이는 ‘대지의 자궁’, ‘세계의 배꼽’으로 믿어지던 마을이다. 당연히 사람들 발길이 잦았을 법하다. 그러나 사람들은 마음놓고 그 ‘대지의 자궁’인 델포이를 출입할 수 없었다. 산기슭의 카스탈리아 샘 곁에, 대지의 여신 가이아의 자식인 엄청나게 큰 왕뱀이 아내를 거느리고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컷의 이름은 ‘퓌톤’, 암컷 이름은 ‘퓌티아’였다. 각각 ‘드라코(雄龍), ‘드라키나(雌龍)’로도 불렸던 것을 보면 이들은 용(dragon)이었을 수도 있다.

용에 대한 동북 아시아인들의 생각과 그리스 및 유럽인들의 생각은 매우 다르다. 우리에게 용은, 물 및 하늘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매우 상서로운 동물이다. 그러나 유럽인들에게 용은, 불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악의 화신이다. 퓌톤 부부는 델포이의 무녀를 만나러오는 인간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아폴론은 장성하기가 무섭게 활을 들고 달려가 사람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던 수컷 퓌톤을 쏘아죽였다. 로마의 바티칸 박물관에 있는 ‘벨베데레의 아폴론’이라고 불리는 유명한 아폴론 상은 퓌톤을 정복한 직후의 당당한 모습을 새긴 것이다. 아폴론은 암컷 퓌티아는 죽이는 대신 인간으로 몸을 바꾸게 하고, 무녀 시뷜레를 대신해서 제우스 신의 뜻, 아폴론 자신의 뜻(神託)을 전하게 하니, 이로써 그 유명한 델포이 신탁이 시작된다.

무녀 퓌티아는 무독사(無毒蛇)들이 우글거리는 대지의 틈에 몸을 눕히고, 그곳에서 솟아오르는 유황을 마시고 망아혼수(忘我昏睡)상태에 든다. 제니들이 퓌티아를 안아다 삼각지대에 앉히면 퓌티아는 혼수상태에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말로 아폴론의 뜻을 전하는데, 이것이 바로 신이 맡긴 신의 뜻이 된다. 상징의 시대는 이렇게 시작된다. 그렇다면 인간의 몸이었던 시뷜레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가.

■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무녀

무신(巫神)이 등장하고, 새 무녀 퓌티아가 무신의 뜻을 전하기 시작하기까지 델포이에서 예언자의 자리를 지키던 시뷜레는 신화의 무대에서 일단 사라진다. 그러다 트로이아 전쟁이 끝난 직후 다시 신화의 무대로 복귀한다. 아이네이아스가 아버지 안키세스를 만나러 저승으로 내려갔을 때의 길라잡이가 바로 시뷜레였다. 저승에서 이승으로 험한 길을 되짚어 나오면서 아이네이아스가 시뷜레에게 이런 말을 했다.

“그대가 영생불사하시는 여신이신지 필경은 죽을 팔자를 타고난 인간인지 나는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렇듯이 저승길을 안내하시니, 저는 세상으로 나가는대로 사당을 차리고 향을 피워 그대를 섬기겠습니다.” 그러자 시뷜레는 한숨을 쉬었다.

“나는 여신이 아니다. 때가 되면 죽어야 하는 인간이 어찌 사당에서 인간의 제물을 흠향하겠는가? 나는 인간이다. 아폴론의 사랑을 받은 적이 있는 인간이다. 아폴론께서는 사랑의 보답으로 무엇을 바라느냐고 했다. 영생을 바라고 있던 나는 어리석게도 흙무더기를 가리키면서, 흙무더기 낱알만큼의 세월을 살 수 있게 해달라고 했다. 잘못이었다. 그만큼의 세월을 살 수 있게 해달라고 빌 줄만 알았지, 청춘으로 살게 해달라고 빌어야 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이제 좋은 시절은 다 지나갔다. 나는 7백년을 살아왔다. 하지만 흙무더기 낱알수를 채우려면 무한히 더 기다려야 한다. 그 때가 되어야 나는 한 줌 흙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만 누가 나를, 신의 사랑을 받은 적이 있는 자로 알아 보리? 하지만 그 때가 되어도 내 형상이 흙으로 돌아갈 뿐, 내 목소리는 영원히 남아 귀 있는자들의 귓가에 울릴 것이다.”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인간 시뷜레는 T S 엘리어트의 장시 ‘황무지’ 머리말에 인용문으로 등장한다.

“쿠마에 땅에서 나(페트로니우스)는 독 안에 든 시뷜레를 분명히 보았다. 아이들이 시뷜레에게,정말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시뷜레는 ‘죽고싶다’고 대답했다.” (페트로니우스) 오비디우스는 시뷜레가 천년을 살았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사람들은 이 말을, 시뷜레라는 단일한 존재가 천년을 산 것이 아니고 아폴론으로부터 동일한 운명을 타고난 무녀가 되풀이해서 나타났다고 해석한다.

■ <이삭줍기>'시뷜레 바위'의 비밀

시뷜레는, 아폴론 신앙 체계가 들어오기까지 델포이의 ‘시뷜레 바위’에 앉아 사람들의 운명을 예언했다. ‘시뷜레 바위’ 뒤로 아폴론의 신전이 보인다. 고대 그리스·로마 신화를 정리한 19세기 미국의 문필가 토머스 벌핀치는, 델포이를 떠난 뒤의 시뷜레에 대해 이렇게 쓰고 있다.

‘…무녀 시뷜레는 동굴에 앉아, 숲에서 따온 나뭇잎 한장 한장에다 사람의 이름과 그 운명을 기록한다. 동굴에는 이렇게 사람들의 운명을 기록한 나뭇잎이 하나 가득 분류되고 정리되어 있었다. 시뷜레는 자신을 섬기는 사람이 동굴로 들어와 물으면 나뭇잎을 꺼내어 들고 그 사람의 팔자를 일러 주었다. 하지만 사람이 들어올 때 바람이 함께 불어 들어와 나뭇잎을 흩어 버리면 시뷜레는 더이상 그것을 분류하지도 정리하지도 않았다. 시뷜레의 예언은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다. ‘점쟁이 여자’, ‘여자 예언자’, ‘마귀 할멈’을 뜻하는 영어 ‘시빌(Sibyl)’은 바로 이 ‘시뷜레’에서 온 말이다.
-이윤기의 신화기행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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