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오베 이야기
작성자 이복근 (21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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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상이 된 니오베

‘포이보스’라고 불릴 때의 아폴론은 태양신이다. ‘파이에온’이라고 불릴 때의 아폴론은 의신(醫神)이다. 하지만 그는 의신인 동시에,질병을 퍼뜨려 인간 세상을 파괴하기도 하는 병(病)의 신이기도 하다. 이 모순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는 태양이 지닌 파괴력과 치유력을 상징한다. 그렇다면 한치도 빗나가는 법이 없는 궁술의 신인 그의 화살은 수직으로 내리꽂히는 빛살이 아니겠는가.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는 차고 기울고 이우는 주기를 갖는다.

아르테미스는 달이 차오를 때는 야생동물의 아름다운 수호여신, 달이 기울 때는 사냥터로 나서는 매정한 처녀신, 달이 이울어 어둠 속으로 사라졌을 때는 저승신 계열에 속하는 헤카테와 동일시된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사인(死因)이 불분명한 주검을 두고 ‘아르테미스의 화살에 맞아죽었다’고 했단다. 암흑의 여신으로서의 아르테미스는 잔혹하다.

니오베 전설’은 이 쌍둥이 남매가 얼마나 잔혹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테바이 왕비 니오베에게는 자랑거리가 많았다. 시아버지가 제우스인 것도 자랑거리, 남편 암피온이 수금 소리로 바위를 움직여 성을 쌓은 정도의 의인(義人)이니 또한 자랑거리였다. 하지만 니오베가 가장 자랑거리로 삼는 것은 제 배 앓아서 낳은 아들딸 14남매였다. 사실 니오베는 훌륭한 자식을 한 방 가득 거느린, 천하의 어떤 어머니보다 자랑스러운 어머니일 수 있었다. 그걸 틈날 때마다 신들에게 견주며 자랑하지만 않았다면….

레토(아폴론과 아르테미스의 어머니) 축제 때의 일이다. 테바이인들은 축제 때가 되면, 월계수 관을 쓰고 신전으로 몰려가 제단에다 유향을 사르고 여느때 먹었던 마음을 일으켜 서약을 세우는 등, 어떤 신들의 축제보다 성대하게 치렀다. 니오베에게는 이게 못마땅했다.

“이게 무슨 돼먹지 못한 수작들이냐? 눈앞에 있는 나보다, 본 적도 없는 레토가 낫다는 것이냐? 내가 누구냐? 딸 7형제, 아들 7형제의 어미가 아니냐? 한다 하는 집안이 내 집과 연을 맺으려고 문전 성시다. 그런데도 너희에게는 쌍둥이 남매 낳고 단산한 레토가,자식을 그 일곱 곱절이나 낳은 나보다 낫다는 게냐?” 니오베의 앙탈에 백성들은 축제를 중동무이하고 흩어졌다. 축제날이라서 테바이를 내려다보고 있던 레토는 불같이 화가 나서 아들딸을 불러 호령했다.

“나는 이날 이때까지 너희 둘만 믿고 어떤 여신에게도 기 꺾이지 않고 살았다. 니오베의 말을 들었느냐? 자식 수로써 나를 능멸한다.” 아폴론과 아르테미스가 이구동성으로 중얼거리면서 활과 화살을 챙겼다. “죄는 밑동이 짓고 벼락은 가지가 맞는구나.” 레토의 아들딸은 구름을 헤치고 화살처럼 날아가 테바이 성 탑루에 내려섰다. 성문 앞에서는 청년들이 병정놀이를 하고 있었는데,니오베의 아들들도 거기에 섞여 있었다. 맏아들은 달리던 말에 채찍질을 하다가 어디에선가 날아온 화살에 맞고는 땅바닥에 굴러 떨어졌다. 이륜 병거를 몰던 둘째는 시위소리에 놀라 말을 채찍질하여 피하려다 그보다 더 빠른 아폴론의 화살을 맞고 쓰러졌다. 넷째와 다섯째는 씨름하려고 마주섰다가 아폴론의 화살에 산적처럼 꿰이어 죽었고, 셋째는 동생들을 일으키려 하다가 쓰러졌다. 여섯째는 연거푸 날아오는 화살을 2개나 맞고 숨을 거두었고, 일곱째는 화살이 이미 시위를 떠났는데도 신들에게 빌어 보았지만 기도를 끝내지 못했다. 일곱 아들의 주검을 나란히 눕혀 놓고 니오베는 하늘을 우러러 부르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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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오베의 딸 (The Niobid)
이 상은 니오베의 딸중 하나가 신벌의 화살을 등에 맞고 괴로워 하는 장면을 나타낸 것이다.
등에 꽂힌 화살을 뽑으려고 몸을 뒤로 젖히며 몸부림 치자, 옷은 벗겨져 내리고 아름다운 알몸이 노출되는 자태는 불쌍한 마음을 자아내게 한다.
얼굴에서 전신까지 비장한 느낌으로 가득찬 이 조각은 인체의 정확한 구조 표현이 다소 결여 되어 있고 육체의 표면적인 묘사의 추구에 지나쳐 있다.
작가는 이오니아계의 조각가로 전해진다.
이 조각은 인체의 엄격한 구성이나 질서있는 동체의 추구 보다는 관능성이을 지닌 비장한 기분을 노리고 표정과 자세를 효과적으로 맞추어 목적을 달성하고 있다.그러니까 어느 정도 바로크적인 데가 있고 , 2~3 세기 뒤에 출현하는 페르가몬의 조각이나 라오콘상 같은 극적인 조각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내 자식으로써, 자식에 주린 자기 배를 채우는 비열한 여신이여,아직 딸 일곱이 남았으니, 아직 그대보다는 다섯이나 많….” 니오베는 말을 끝내기도 전에 시위소리를 들었다. 맏딸이 아르테미스의 화살을 맞고 오라비 옆에 자리를 보아둔 듯이 쓰러졌다. 둘째가 니오베를 위로하다 주저앉았다. 셋째는 숨으려다 고꾸라졌고, 넷째는 떨다가 무릎을 접었고,다섯째는 엎드리다가 그대로 일어나지 못했고, 여섯째는 눈을 감고 있다가 영영 뜨지 못했다. 니오베는 제 몸을 방패로 막내를 가리며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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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오비드 화가가 그린 꽃받침 모양의 적색 크라테르에 그려져 ...
현재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꽃 모양의 그리스 항아리에 그림을 그린 화가이다. 크라테르(포도주와 물을 섞는 데 사용한 단지)에 니오베의 자식들이 죽는 광경을 그렸기 때문에, 니오비드 화가라고 부른다(→ 그리스 도기).



“하나만! 하나만 남겨 주세요! 열셋을 데려갔으니 막내 하나만!” 아르테미스의 화살이 막내를 꿰뚫고는 니오베의 가슴 앞에서 자로 잰 듯이 멎었다.

니오베는 서 있었다. 바람이 불었는데도 머리카락이 날리지 않았다. 먼저 눈이 움직이지 않았다. 이어서 혀가 굳고, 피가 흐르기를 그쳤다. 석화(石化)가 시작되었다. 테바이에 있는 니오베 바위에서는 수원(水源)이 없는데도 물방울이 마르지 않고 떨어진다. 사람들은 그 물방울을 니오베의 눈물이라고 한다. 영국 시인 E 무어에게, 병 고칠 생각은 않고 죽자고 엉터리 시(詩)만 쓰는 지독한 돌팔이 의사 친구가 있었던 모양이다. 시인은 친구를 이렇게 조롱하고 있다.

‘병원은 저 희대의 인물인 / 내 친구가 시를 쓰던 곳 / 내 친구는 엉터리 시를 쓰면서 / 무수한 사람을 죽였다. / 의신(醫神)이자 악신(樂神)인 아폴론이 / 니오베의 아들딸을 죽였듯이…’

태양의 양기(陽氣)와 달의 음기(陰氣)의 공동 작전에 걸려 몰살한 니오베의 아들딸은 과연 무엇인가?

■ 과학의 ‘신화 따라잡기’

신화에 대한 마르크스의 다음과 같은 발언은 흥미롭다.

‘신화는 상상력을 절묘하게 부려,자연을 형상화하거나 자연의 정복을 꾀한다. 따라서 자연이 정복되기 시작하면 신화는 소멸한다. 인쇄소가 있는데 ‘페메(Pheme)’가 무슨 소문을 퍼뜨릴 수 있겠으며, 피뢰침이 발명된 바에 ‘제우스’의 벼락이 무슨 힘을 쓸 것이며, 신용회사가 있는데 ‘헤르메스’에게서 무슨 보람을 볼 것인가?’ ‘페메’는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소문의 여신이다. 로마신화에서는 ‘파마(Fama)’가 된다. ‘평판’ 혹은 ‘명성’을 뜻하는 영어 ‘페임(fame)’은 여기에서 유래한다. 제우스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벼락의 신, 헤르메스는 상업 종사자들 및 사기꾼들의 수호신이다.

신화는 작가의 주관적인, 혹은 모듬살이의 집단 무의식적인 환상이고, 과학은 객관적인 현실이다. 환상과 현실이 그렇듯, 신화와 과학도 상호 모순되는 배타적 개념이어야 한다. 과학은 신화의 상위 개념인 만큼,과학이 발달하면 신화는 꼬리를 감추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마르크스도 자기 주장을 여기까지는 밀고나가지 않는다. 그는 신화와 과학을 상호 모순적인 동시에 상호 배타적인 개념이 아니라, 상호 모순적인 동시에 상호 포괄적인 개념으로 파악한다. 그래서 그에게 신화는 과학이 ‘도달할 수 없는 어떤 고귀한 본보기’가 된다. 그래서 그 역시 과학사(科學史)의 일부를 ‘과학의 신화따라잡기’의 역사로 인정한다.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의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도 그렇다. 이 두 측면은 상호 배타적이 아니라 상호 포괄적이다. 신화는 어쩌면, 상호 대극하는 개념이 완전히 분화되기 이전, 신성(神性)과 인성(人性)과 수성(獸性)이 분화되기 이전의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신화의 세계에서 신들이 인간과 시비하기를 마다하지 않고, 인간이 신들을 비아냥거릴 수 있었던 것은 신성과 인성이 완벽하게 분화되지 않은 시대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켄타우로스(반마반인·半馬半人), 미노타우로스(반우반인·半牛半人), 사튀로스(반양반인·半羊半人) 같은 반수반인(半獸半人), 헤르마프로디토스 같은 양성인(兩性人)이 등장하는 까닭도 그렇게 설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병의 신 아폴론이 없는 자리에는 의신 아폴론이 설 자리도 없다. 병원에서 시위 현장으로 시위하러 달려나가는 현대의 의사들(물리적 의미에서든 정신적 의미에서든)에게도, 거룩할 것을 지나치게 요구하지는 말아야 할 것 같다. 어차피 의사에게는 병폐가 장사 밑천이니….

(이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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