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테미스 이야기
작성자 이복근 (21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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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치않은 신격의 아르테미스

달에 인간을 연착륙시키기 위한 미국의 우주개발 계획의 이름은? ‘아폴로 계획’이다. ‘아폴로’는 아폴론의 로마식 이름이다. 1969년 7월 16일,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달에 착륙한 유인 우주선의 이름은? ‘아폴로 11호’다. 왜 하필이면 ‘아폴로’였을까. 그리스 신화에서, 달의 여신은 누구일까. 아르테미스다. 로마 식으로는 ‘디아나(Diana)’, 영어식으로는 ‘다이아나’다. 달(아르테미스의 별)로 날아가는 우주선 이름이 어째서 ‘아폴로’일까. 아르테미스와 아폴론은 쌍둥이 남매지간이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 소속 첨단 과학자들의, 신화 문맥을 이용한, 절묘한 의미부여다. 그들에게 있어 누이의 별로 날아가는 우주선에 오라비(아폴론)의 이름 붙이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을 것이다.

[그림]Giuseppe Cesari(伊,1568-1640)◈Diana the Huntress(1600-1)
Artemis(아르테미스)는 Diana(디아나) Seles(셀레스)라고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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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론과 아르테미스는 제우스와 레토 사이에서 난 쌍둥이 남매다. 거칠게 말하면 오라비는 태양신, 누이는 달의 여신이다. 하지만 아르테미스의 신격(神格)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아르테미스는 매우 모순적이어서 사슴이나 암곰, 멧돼지 같은 사냥감의 수호여신인가 하면 사냥의 여신이기도 하고,처녀성의 수호여신인가 하면 해산(解産)의 수호여신이기도 하다. 아르테미스는, 활과 화살통을 둘러멘 채, 사슴을 대동하고 다니는 아름다운 처녀신으로 그려진다. 아르테미스는 아버지 제우스에게,영원히 처녀로 살겠노라고 맹세한 여신, 몸종인 신녀(神女)들에게도 목숨을 걸고 처녀성을 지킬 것을 야멸차게 강요하는 여신이다. 신녀가 처녀성을 지켜내지 못하면 제 손으로 죽여 버리기도 한다.

제우스가 딸 아르테미스로 몸을 바꾸고, 딸의 신녀 칼리스토에게 접근한 적이 있다. 신녀는, 결정적인 순간에 본색을 드러낸 제우스에게 겁탈당하고 만다. 달이 차면서 신녀의 배가 눈에 띄게 커지는 것을 보고서야 여신은 이것을 알았다. 해산의 수호여신이기도 한 아르테미스는, 아들을 낳게 한 직후 신녀를 곰으로 전신(轉身)하게 한다. 곰이 된 신녀는 죽을 때까지 사냥꾼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세월이 흘러, 신녀가 낳은 아들 아르카스는 사냥꾼이 된다. 어느날, 곰으로 몸을 바꾼 어머니 칼리스토와 아들 아르카스는 숲속에서 맞닥뜨린다. 어머니는, 아들을 물어죽이지 않으면 아들의 화살에 목숨을 잃어야 한다. 제우스가 이것을 보고는, 아들까지 곰으로 전신시켜 모자를 하늘에다 붙박으니 이것이 바로 큰곰자리, 작은곰자리다….

신화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별자리 이름의 기원을 설명하는 전설인 동시에 아르테미스가 얼마나, 겨울 초승달처럼 싸늘하고 차가운 여신인지 설명을 시도하는 신화이기도 하다.

■터키와 그리스의 아르테미스

1999년 1월 터키의 셀죽박물관에서 만난 아르테미스 상(像) 앞에서 나는 눈을 의심했다. 화살통을 메고 활을 든 아름다운 아르테미스가 아니었다. 머리에는, 승리의 여신 니케(영어 이름 ‘나이키’)와 서양의 12지(支)라고 할 수 있는 ‘조디악(12궁원·宮圓)’이 새겨진 관을 쓰고, 목에는 풍요의 상징인 목걸이를 두른 시골스러운 여신이었다. 가슴에는 여러 개의 젖(혹은 알)이 매달려 있었다. 머리 끝에서 발끝까지 풍요의 여신이었다. 야멸찬 처녀성의 수호여신 아르테미스가 아니었다.

그리스의 8월 더위는 살인적이었다. 아테나, 아폴론, 제우스, 포세이돈… 신전 가는 족족 나는 더위와 갈증에 시달렸다. 시판 생수를 여러 병 지고다니며 마셔야 했다. 비슷하려니 여기면서 아테네에서 북동쪽으로 40㎞ 떨어진 브라브로나의 아르테미스 신전을 찾았다. 매표소는 있는데 직원이 없었다. 주위를 둘러보면서 들어갔더니, 뚱뚱한 직원 처녀가, 신전 기둥 사이에서 풀깎는 총각과 노닥거리고 있었다. 풀 깎는 총각 모습이 눈에 설었다. 맙소사, 풀을 깎다니… 풀이 아니라 갈대였다. 나는, 깎아야 할만큼 풀이나 갈대가 그토록 무성하게 자라 있는 신전을 본 적이 없었다.

아폴론 신전은 델포이에 있다. 파르나소스 산자락에 있는 옛 도시 델포이는 그리스에서 양기(陽氣)가 가장 센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아르테미스신전은 포풀라, 버즘나무, 무화과, 유칼립터스에 둘러싸여 있었다. 신전 기둥 아래로 배수로가 있어서 시선으로 쫓아가 보니, 세상에…. 거울같이 맑은 샘이 있었다. 바닥의 모래알들이 부지런히 버섯꼴로 원운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끊임없이 맑은 물이 솟는 샘이었다. 신전 기둥 밑에서 샘으로 이르는 물길 가에 질경이가 자라 있었는데, 잎 크기는 웬만한 쥘부채만하고, 수직으로 솟은 씨대궁이는 석 자에 가까웠다. 그 맑은 샘에서 자라고 있는 수련은, 아래에서 솟아오르는 물에 몸을 맡기고 함께 일렁거렸다. 나는 그리스땅에서 샘물이 솟는 신전, 그토록 음기(陰氣)가 푸근하게 감도는 포근한 신전은 본 적이 없다.

매표원 처녀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이 신전은 정말 처녀신 아르테미스처럼 아름답군요. 나는 샘이 있는 신전을 처음 보아요.” “아르테미스가 왜 처녀신인지 아세요.” “그거야 제우스에게 순결을 서약했으니까….” “오라버니인 아폴론 때문이 아닐까요. 아르테미스는 순결을 잃으면 오라버니 곁을 떠나야 하게요?” “말 되네? 말 나온 김에 하나 물어 봅시다. 여신은 순결을 잃는 처녀들을 아주 싫어하죠? 그런데 어째 출산은 도와준다지요? 그리스인들은 이걸 어떻게 설명해요?” “아르테미스를 달의 여신이라고들 하는데, 저는요, ‘멘스트레이션(월경·月經)’의 여신이 아닐까 싶어요. 순결 잃고 애 배면 그게 ‘스탑(stop)’하잖아요?” “그러면 출산을 도와주는 건 어떻게 설명하지요?” “출산해야 그게 또 시작되니까… 저 샘물이 솟고 고이고 넘치듯이….” “저 샘물은 마르지 않나요?” “3700년동안 마른 적 없대요.” 나는 그 처녀에게 신화를 해석할 배경이 있는지 없는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그 처녀에게도 아르테미스를 ‘달거리 여신’으로 해석할 권리는 있다고 생각한다.

<이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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