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오뉘소스 이야기
작성자 이복근 (211.♡.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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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onysus, Athenian red-figure hydria
C5th B.C., Harvard University Art Museum


"…20여년전, 상청(喪廳)에서 밤새 술을 마시며 노름판을 벌이는 문상객들 틈에 끼인 일이 있다. 상가에서는 고맙게도 문상을 빌미로 노름하는 노름꾼들에게 이른바 피로회복제이자 자양강장제인`박카스'를 돌렸다.

노름꾼 중에, 고등학교 시절에 영어와 독어 시험을 치르고는 `오늘은 영어 시험을 두번이나 보았다'고 할 정도로 공부와는 담을 쌓고 지내던 친구, 어렵사리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심기일전하고 프랑스에 유학, 박사학위까지 받아와 처음으로 그 자리에 합류한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유학 기간에 부쩍 늘어버린 교양이 스스로 너무나 기특해서 못 견디겠던 모양이다.

`이 박카스가 무슨 말인지 아는 사람?' 그가 동기동창들을 향해 물었다. 몇몇 동기동창들 눈길이 허공에서 만났다. 그 눈길의 의미는 이렇다.

모르는 체하자, 모르는 체하자. 저 친구에게 아는 체할 기회를 주자. 우리가 `박카스'의 의미를 어떻게 모를 수 있었겠는가? 제약회사의 어마어마하던 홍보공세 앞에서 우리가 어떻게 모르고 넘어갈 수 있었겠는가? 하지만 모르는 체했다. 그러자 프랑스 박사가 설명하기 시작했다.

`신화에 나오는 주신(酒神)의 이름이다. 박카스로 말할 것 같으면….' 웃음을 참으려고 혀를 깨물고 있던 우리는, 장황한 설명을 끝낸 그 프랑스박사에게 별명을 하나 만들어 선사했다. `미스터 박카스'였다.

`미스터 박카스'.…국내에 있을 때는 팽팽 놀다가, 외국에서 별것도 아닌 것을, 우리도 다 아는 것을 배워가지고 들어와 떠들어대는 사람을 우리는 그 때부터 `미스터 박카스'라고 불렀다. 너도, 조심해라. `미스터 박카스'가 되고 싶지 않거든." 한 선배가, 미국에서 5년만에 귀국한 나에게 한 말이다.

널리 알려진 '박쿠스'는 로마식 이름

'박카스'는 바른 표기가 아니다. 그리스 식 본명은 `디오뉘소스(Dionysus)', 별명은 `박코스(Bakkhos)', 로마식 이름은 `박쿠스(Bacchus)'다. `박쿠스'는 포도나 딸기 같은 액과(液果), 혹은 장과(漿果)을 뜻하는 라틴어 `박카(bacca)'에서 온 말인 듯하다.

포도나 딸기 같은 액과가 술이 되자면 그 몸을 한번 바꾸어야 한다. 한번 죽어야 한다. 이제는 `박카스' 대신 `디오뉘소스'라는 본명을 쓰기로 하자. 디오뉘소스는 어떻게 죽는가?

아폴론의 성도(聖都) 델포이는 햇볕이 뜨겁기로 이름난 도시다. 또 하나의 성도인 남부의 코스는 아주 `빛의 도시'라고 불린다. 이 두 도시는 봄여름이면 햇살이 워낙 강렬한데다, 주위가 하얀 대리석산 아니면 석회암산이라서 그 반사광 때문에 색안경 없이는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을 정도다.

1999년 2월, 델포이에 있는 아폴론 신전 앞에서, 한 언어학 교수로부터 너무나 놀라운 얘기를 들었다.

"……겨울이 되면 아폴론은 이 델포이를 떠납니다. 그에게는 음산한 겨울이 어울리지 않는 것이지요. 그래서 남부 코린토스로 내려가 겨울을 나는 것입니다. 그동안 여기에서 지내는 신이 어느 신인지 아세요? 바로 디오뉘소스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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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ONYSOS & SATYROS

Museum Collection: Antakya Museum, Antakya, Turkey
Catalogue Number: Antakya 861
Type: Mosaic
Context: Antioch, House of the Drunken Dionysos
Date: C4th AD
Period: Imperial Roman

SUMMARY

The drunken god Dionysos walks supported by a Satyros. He spills his cup of wine, which is lapped up by a panther cub. The god has long hair and is crowned with a wreath of ivy. The Satyr is named Skyrtos in a similar mosaic.



태양신 아폴론이 떠난 음산한 겨울 도시로 들어오는 주신(酒神) 디오뉘소스……. 니체의 `비극의 탄생'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비극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니체가 도식화(圖式化)한 예술상의 세계관에 따르면 비극은 `아폴론스러움', 혹은 `아폴론적 사유'와 `디오뉘소스스러움', 혹은 `디오뉘소스적 사유'의 충돌로 생겨난다. 아폴론스러움은 조형적(造型的)이고 정적(靜的)이고 이성적(理性的)이다.

그래서 이 성향은 조형미술과 서사시의 본질을 이룬다. 하지만 디오뉘소스스러움은 충동적이고 격정적이고 자기도취적이다. 그래서 이 성향은 음악이나 무용의 본질을 이룬다. 아폴론과 디오뉘소스의 신격(神格)은 이들이 총애하는 한 무리의 여성들 성격을 통해서도 잘 드러난다. 아폴론이 총애하는 여성 무리는 각기 그 직분이 다른 아홉 자매로 이루어진 `무사이(뮤즈)'다.

평화를 사랑하는 이들은 신들의 잔치자리에 불려나가지 않으면 파르나소스 산정에서 저희들끼리 어울려 노래부르거나 춤추거나 글짓거나 한다. 하지만 디오뉘소스가 총애하고, 디오뉘소스를 광적으로 추종하는 여신도들은 어울리기만 하면 더없이 질탕한 황음무도(荒淫無道)의 술자리를 편다. 주광(酒狂)의 소용돌이가 일면 이들은 사람을 찢어죽이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가성(歌聖) 오르페우스가 그렇게 찢겨 죽었다. 디오뉘소스도 그렇게 찢겨 죽었다가 해마다 부활한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다.

헤라는 바람둥이 남편 제우스가 인간으로 변장하고 처녀 세멜레의 집을 가만히 드나든다는 소문을 들었다. 신성혼의 수호여신이자 질투의 화신인 헤라는 여느 때 같았으면 세멜레의 몸을 짐승 같은 것으로 바꾸어 버리는, 직접적인 폭력을 행사했을 터이다.

하지만 그 짓에도 심드렁해진 헤라는 세멜레로써 세멜레를 치기로 하고는 세멜레의 몸종으로 변장하고서 찾아가 꼬드겼다.

'아폴론적 사유'와 충돌때 비극 탄생

"…아씨 댁 드나드시는 분이 정말 제우스 신이시라면 얼마나 좋겠어요만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마음이 놓이지 않아요. 사내들은 순진한 처녀 방을 기웃거릴 때 신들 행세를 곧잘 한답니다.

그 분이 당신 입으로 제우스 신이라고 하시더라도 아씨께서는 마음을 놓지 마시고 아씨를 정말 사랑한다면 증거를 보여달라고 하세요. 정말 제우스신이시라고 하시거든, 헤라 여신 앞에 나타나실 때처럼 영광스럽고도 위풍당당한 신의 모습을 보여달라고 하세요. 벼락까지 차고 오셔서 안아 달라고 해보세요."

세멜레는 듣고 보니 그럴 듯했던지, 며칠 뒤 제우스 신이 오자, 소원이 있는데 꼭 들어주겠다는 약속만 하면 말하겠노라고 했다. 제우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 거절하지 않을 터이니 말해 보게. 그 소원을 들어주겠노라고 스튁스 강에 맹세하지. 스튁스 강에다 대고 하는 맹세는 신들도 뒤집을 수 없네."

귀 얇은 세멜레…. 애인의 손에 죽을 팔자를 타고난 이 세멜레는 제 파멸의 씨앗인 줄도 모르고 제우스의 약속만 믿고는 어린애처럼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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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IRTH OF DIONYSOS

Museum Collection: Museo Nazionale Archeologico di Taranto, Taranto, Italy
Catalogue Number: Taranto 8264
Beazley Archive Number: N/A
Ware: Apulian Red Figure
Shape: Krater, volute
Painter: Name vase of the Painter of the Birth of Dionysos
Date: ca 405 - 385 BC
Period: Late Classical

SUMMARY

Detail of the central figures from a painting depicting the birth of Dionysos. The new born god emerges from the thigh of Zeus. He is depicted wearing a wreath of vine-leaves, and stretches out his arms, either to ward of or embrace the goddess about to grab him. Zeus reclines on a hill, holding his royal sceptre in hand. Behind him stands Apollon (see image below), above the shepherd Pan (below), and beside, gazing upwards at the birth, is Hermes, who is about to receive the babe and deliver him into the foster care of Seilenos and the Nysiades (below). A goddess reaches out to grab the child. Presumably this is Hera, for she is shown with the royal sceptre and diadem of a queen, who plans to snatch away the babe.


제우스의 허벅지서 태어난 사연

"그럼 말씀드리지요. 헤라 여신 앞에 나타나실 때의 그 모습, 헤라 여신과 사랑 나누실 때의 그 모습을 저에게 보여주세요."

아뿔싸! 이렇게 생각한 제우스는 그 말이 입 밖으로 다 나오기 전에 세멜레의 입을 막으려고 했다. 그러나 때늦은 다음이었다. 제우스는 한숨을 쉬었다. 이제 세멜레의 소원은 들어주지 않을 수 없게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맹세를 취소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제우스는 슬픔에 잠긴 채 천궁으로 올라가, 대신(大神)의 옷을 찾아 입고 벼락을 찾아 들었다. 옷은 비교적 빛이 덜 나는 것으로, 벼락은 힘이 덜한, 아주 가벼운 것으로 들고는 세멜레의 집으로 다시 내려왔다.

그러나 세멜레는 인간이었다. 세멜레의 육체는 인간의 육체였다. 인간의 육체는, 천궁의 신이 내뿜은 광휘를 견딜 수 없다. 세멜레는 제우스의 광휘 앞에서 새카맣게 타죽었다. 제우스는 세멜레의 뱃속에 들어 있던, 달이 덜 찬 아기를 꺼내어 자기 허벅지에 놓고 실로 기운 뒤, 남은 달을 마저 채워 꺼냈다고 하는데, 이 아기가 바로 뒷날의 디오뉘소스다.

디오뉘소스는 어머니가 둘(세멜레, 제우스의 허벅지)이라고 해서 `디오메토르(어머니가 둘인 자)', 여러번(세멜레의 몸에서 한번, 제우스의 허벅지에서 또 한번) 태어났다고 해서 `폴뤼고노스(여러번 태어나는 자)'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윤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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