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지창 움켜쥔 '바다의 신' 포세이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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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이복근 (211.♡.20.43) | 작성일 | 08-05-08 19:09 | ||
우리 나라 사람들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해신(海神) '포세이돈'의 이름을 비교적 자주 입에 올리고 다닌 것은 언제일까. 1972년 미국 감독 로널드 니메가 제작한 영화 '포세이돈 어드벤처'가 상영되고 있었을 때일 것이다.
휴가중인 경찰관으로 나온 어네스트 보그나인, 목사로 나온직 헤크먼의 열연이 내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하지만 '포세이돈 어드벤처'는 해신 포세이돈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배의 이름이 '포세이돈 호'였을 뿐이다. '포세이돈 호'…배 짓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지어 붙이고 싶은 이름일 터이다. 하지만 이름은 이렇게 오만하게 짓는 것이 아니다. 빙산과 충돌, 침몰한 저 유명한 배 이름 '타이타닉'은 신들 나라의 거신(巨神)들을 일컫는 '티탄'에서 딴 이름이다. 세게 나오는 것은 좋은데, 너무 거창한 야망의 배후에는 '오만'이 묻게 마련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히브리스(hybris)'라고 불리는 이 '오만'은 병통 중에서도 고약한 불치병이다. 그 끝은 죽음이다. 해신 포세이돈은 신들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제우스의 형이자 아우다. 형이자 아우인 까닭은, 태어나기는 먼저 태어났지만 자라기는 나중에 자랐기 때문이다. 신화나 옛이야기에는 이런 일이 잘 일어난다. 이들의 아버지 크로노스에게는, 아내 레아가 자식을 낳는 족족 삼켜버리는 괴악(怪惡)한 버릇이 있었다. 아버지 크로노스는 먼저 태어난 자식을 다섯이나 삼켰다. 여섯번째로 태어난 제우스가 꾀를 써서 이들을 모두 토해내게 하니, 제우스의 형들과 누나들은 태어나기는 먼저 태어났지만 자라기는 나중 자란 신들인 것이다. 먼저 태어났지만 나중 자란 형들과 누나들은 모두 올림포스 신들 세계의 요직을 차지한다. 믿어지지 않지만, 신화는 우리에게 그런 황당한 이야기가 믿어지기를 바란다. 그러니 믿어보자, 믿어보면 신화가 우리에게 전하려는 메시지가 카랑칼아하게 들린다. 형들이자 아우들인 포세이돈과 하데스는 제우스가 친정 체제를 굳히는데 큰 공헌을 하는 신들이다. 그래서 제우스는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를 시켜 자신을 포함한 3형제가 가질 천상천하에 당할 것이 없는 무기를 만들게 했다. 제우스 자신을 위해 만들게 한 무기는 벼락이다. 제우스가 던지는 이 벼락을 맞으면 불타지 않는 것이 이 세상에 없다. 저승신 하데스에게 준 것은 투구다. '키네에(kynee)'라는 이 모자는 우리 설화에 등장하는 '도깨비감투'와 아주 흡사한 장신(藏身)투구다. 신이든 인간이든 이 '퀴네에'를 쓰면 다른 신, 다른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염라대왕에 해당하는 하데스도 늘 이 투구를 쓰고 있기 때문에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하데스'라는 말은 '보이지 않는자','보이지 않게 하는자'에서 유래한다. 그리스인들은 '죽다'라는 말을 '보이지 않게 되다'와 동일시했음에 분명하다. '죽다'라는 뜻을 지닌 일본어 '나쿠나루')는 보이지 않게 되다는 말과 발음이 아주 똑같다. '죽음'은 '보이지 않게 됨'인 것이다. 제우스보다 먼저 났지만 자라기는 나중 제우스가 형이자 아우인 포세이돈을 해신에 봉하면서 준 선물은 삼지창(三枝槍)이다. 그리스어로는 '트리아이니(Triaini)','이가 셋인 물건'이라는 뜻이다. 라틴어 '트리덴템(tridentem)도 '이(dens)가 셋(tri)인 물건'이라는 뜻이다. 영어 '트라이덴트(trident)'는 라틴어에서 유래한다. 미국이 최초의 핵잠수함을 건조하고 붙인 이름이 바로 이 '트라이덴트'이다. '포세이돈'이라고 붙이지 않은 것이 가상하다. Poseidon (Neptune) driving a chariot of hippocamps, Roman mosaic C3rd A.D., Sousse Museum, Tunis 포세이돈의 이 삼지창의 가지 하나하나는 각기 구름과 비와 바람을 상징한다. 포세이돈의 호풍환우(呼風喚雨),즉 바람불게하기와 비오기를 자유자재로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삼지창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 세상의 환웅(桓雄)할아버지가 거느리고 내려오셨다는 '운사(雲師)','우사(雨師),'풍백(風伯)'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포세이돈은 아테나 여신과 아티카의 한 도시를 놓고 겨룬 적이 있다. 신들은 아티카 사람들에게 상대적으로 유익한 선물을 주는 신을 그 도시의 수호신으로 삼게 하겠다고 했다. 포세이돈은 아티카 사람들에게 말을, 혹은 말이 발길질로 샘을 선물로 주겠다고 했고, 아테나 여신은 올리브(橄欖·감람)나무를 선물로 주겠다고 했다. 신들은 올리브나무를 선물한 아테나 여신의 편을 들어 그 아티카의 도시를 '아테나이',즉 '아테나 여신의 도시'로 부르기로 했으니 이 도시가 바로 현대의 '아테네'다. 포세이돈의 말, 혹은 말이 발길질로 판 샘이 아테나 여신의 올리브나무에 밀린 것이다. K2.11 ATHENE & POSEIDON Museum Collection: Cabinet des Medailles, Paris, France Catalogue No.: Paris Medailles 222 Beazley Archive No.: 310452 Ware: Attic Black Figure Shape: Neck Amphora Painter: The Amasis Painter Date: ca 540 - 530 BC Period: Archaic 그리스인들의 성산(聖山)아크로폴리스에는, 포세이돈의 말이 발길질로 팠다는 샘이 아직까지도 남아있다. 예술의 여신들 무사이 (무즈)들이 살았다는 헬레콘산에도 '히포크레네'라는 샘이 있다. 샘물을 마시면 예술적 영감이 풍풍 쏟아지게 한다는 샘이다. 날개 달린 천마 페가수스가 발길질로 팠다는 이 샘의 이름은 '히포크레네'는 '말의 샘'이라는 뜻이다. 포세이돈, 말, 샘은 무슨 관계가 있을까. 포세이돈은 말, 특히 '백마(白馬)'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30대 초반부터 신화를 정독(精讀)하던 나는 포세이돈이 말과 샘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까닭이 늘 궁금했다. 포세이돈은 해신이자 수신(水神)인만큼, 샘과의 관련성을 유추하기는 어렵지 않다. 하지만 어째서 인가. 바다의 파도가 지니는, 부정적이면서도 긍정적인 양면성을 상징하는 것일까. 발길질로 샘을 파는 말은, 끝없이 가멸찬 생명의 기운을 상징하는 것일까. 아테네에서 남동쪽으로 69KM, 아티카 반도 제일 끝 지점인 "SUNION" 곶의 산 언덕, 땅끝 깍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 포세이돈 신전(TEMPLE OF POSEIDON, 기원전 5세기)이 세워져 있다. 영국의 시인 바이런도 노래했던 바다의 수호신 포세이돈을 모신 신전. 15개의 도리아식 원주를 드러내 놓고 있으며 파르테논신전보다 몇 년 늦게 지어진 것이다. 이것도 다른 신전처럼 공사중이어서..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태풍의 기운이 감도는 밤바다를 한동안 바라본 적이 있다. 나는 백마가 몰려오고 있는 듯한 환시(幻視)를 경험하면서 그리스의 신화 작가들에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없었다. 그로부터 25년 세월이 지난 지금 그 물증을 확보하여 독자들에게 보여주게 된 것을 나는 기쁘게 생각한다. 말은 파고였다. 바다에서 잉태한 생명을 뭍으로 밀어올리는 생명의 기운이 아닌가. 그렇다면 말이 발길질로 팠다는 샘은, 지하에 '보이지 않게' 몸을 숨기고 있던 생명을 지상으로 밀어올리는 생명의 기운이 아닌가. 여신 아테나와 도시놓고 자존심 격돌 파도를 말 모양으로 그린 이 그림이 있다고 해서 포세이돈의 말과 파도의 동일시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체험적 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체험적 현실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신화적·종교적 현실도 존재한다. 파도를 말과 동일시한 예술가의 영감은 나의 예감과 만나면서 신화적 현실이 된다. 포세이돈은 실재했던 신인가. 아닌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테네 동남쪽 수니온 곶에는 포세이돈 신전이 실재한다. 그것은 경험적 현실이다. 신화적 현실이 빚어낸 경험적 현실이다. 신화는, 종교는 없던 것을 있게 한다. <이윤기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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