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사랑방]"통기타 선율과 함께 추억여행 떠나요" - 각시탈
작성자 이복근 (211.♡.20.21)
오래된 목재로 단장 고색창연한 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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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시탈의 주인인 백태율-배미숙씨 부부가 라이브 공연을 하고 있다.

주인 부부 7080 음악 하루 5번씩 연주
회원수 7000명 넘어…공연때마다 연락



문화란 게 별 것 아니다. 사람이 모여들고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그게 쌓이면 문화다.

그렇게 치면 옛날 동네 사랑방은 문화의 튼실한 씨앗이었다. 깊은 겨울밤 화롯불에 군밤을 던져넣으며 피워올리던 이야기 꽃, 그 이야기가 한 구절, 두 구절 모이다 보면 마을의 절절한 내력이 되고 문화가 된다. 그렇게 세월이 쌓이는 만큼 추억의 우물은 또 웅숭깊어진다.

중구 태화동 불고기단지 내 '각시탈'은 그런 옛날 사랑방 같은 곳이다. 우선 고색창연한 통나무로 고풍스럽게 꾸며낸 인테리어가 그렇고, 동동주와 나물 등으로 차린 음식이 그렇다. 무엇보다 무대에서 풀어내는 주인장 부부의 노래는 손님들을 흑백 아련한 과거로 실어나르는 나룻배다.




각시탈은 원래 중구청 앞 지하에 지난 2003년 3월 자리잡았다. 거기서 자리가 좁다고 느끼던 차에 지난 2006년 7월 지금의 태화동 불고기단지로 옮겼다. 저녁무렵 고기굽는 냄새가 길가에 퍼지기 시작하면 생뚱맞게 통기타 음률이 피어오르는 곳이 있으니, 그 곳이 바로 '각시탈'이다. 하루해가 남산 은월봉 뒤로 떨어지고 태화들에 땅거미가 짙어오면 각시탈은 추억의 등불을 하나 둘씩 켜 올린다.

일요일을 제외한 매일 저녁 무대에 오르는 두 남녀는 주인장 부부인 백태율(50)·배미숙(50)씨. 백씨는 머리를 뒤로 묶고 수염을 길렀으며, 배씨는 항상 챙모자를 눌러쓰고 있다. 70~80년대 통기타의 푸근한 음률은 그들의 이런 편안한 모습에서 나온다. 시끄럽고 날 선 노래들도 그들의 무대에만 올라가면 순한 꽃잎처럼 흩날린다.

각시탈은 6년밖에 안됐지만 각시탈을 가로 세로로 받치고 있는 기둥은 1000년이나 됐다. 지난 1973년 경주 양동마을에 있는 보물 412호 '향단'을 수리하면서 나온 서까래와 대들보 등이 바로 이것들이다.

'향단'은 회재 이언적 선생이 1540년 경상감사로 부임하면서 임금의 지원을 받아 지은 것. 당시 500년 넘은 나무를 썼으니 지금은 1000년이 다 됐음직하다. 백씨는 수리 후 지금껏 목재를 보관해오고 있던 이씨 문중에 부탁해 이 나무들을 가져왔다.

2008년을 살고 있는 사람들과 1000년 전의 소나무가 7080의 노래를 함께 듣고 있는 셈이다.

카페 입구에는 나무의 내력을 알려주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는데, 여기에 백씨는 '선조들의 숨결을 살려 훌륭한 쉼터를 만들겠다'고 써놓았다.

나무뿐만 아니라 '각시탈'이란 이름도 먼 과거에서 왔다. 우리 민족의 향취가 흠뻑 배어있는 우리의 탈 '각시탈'. 단골들은 이 시대의 각박한 현실에서 잠시 얼굴을 감추고 각시탈 속으로 추억여행을 떠난다.

백씨 부부는 하루저녁에 5번씩 무대에 오른다. 피곤하고 힘들겠다는 우려와는 달리 그들은 무대에 오를 때마다 새로운 활력을 얻는다.

"노래를 잘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렇지만 이 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지난날의 아름다운 추억을 끄집어내주고 삶의 용기를 북돋아 줄 수 있다는데서 큰 기쁨을 갖고 노래를 하고 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 짧은 테크닉 보다는 사랑이 중요하지요."

백씨 부부는 6년째 라이브 카페를 운영해오고 있지만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을 '술 손님'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한번도 없다고 한다. 카페는 '쉼터'이고 손님은 '벗'이라는게 이들의 철학이다.

그래서 그런지 각시탈의 회원이 벌써 7000명을 넘어섰다. 손님들이 카운터 노트에 휴대폰 번호 등을 적어놓으면 이를 정리해 놓았다가 정기공연과 특별공연이 있을 때 일일이 문자로 연락해준다. 회원이 많아질수록 백씨 부부의 어깨는 더 무겁다. 현재 700~800곡의 레퍼토리도 더 늘려야 할 판이다.

각시탈의 특징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손님들이 춤을 추거나 직접 노래를 할 수 없다는 것. 분위기가 산만해지고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대신 백씨 부부가 색소폰 연주자와 함께 30분 간격으로 라이브 무대에 오르며, 나머지 시간에는 편안한 가요를 들려준다.

"6년전 중구청 앞에서 카페를 열 때만 해도 다섯식구가 티코를 타고 다녔어요. 그렇지만 그러면서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알았습니다. 그 이전에 사업도 해봤지만 무엇보다 부부가 평소 하고싶었던 일을 같이 하게되니 더 이상 바랄게 없었던 거죠."

앞으로도 7080의 노래를 부르며 지금의 행복이 꺼지지 않게 하겠다는 것이 이들의 꿈. 이런 마음이 유전됐는지, 둘째 딸 하람양이 올해 부산예대 실용음악과에 입학해 대학가요제 준비에 한창이란다. 글=이재명기자 jmlee@ksilbo.co.kr

사진=김동수기자 dskim@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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