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되고 싶었던 인간' 알렉산드로스대왕
작성자 이복근 (211.♡.20.43)
인도 정벌 뒤 '디오뉘소소 화신(化身)'으로 귀환

우리가 `알렉산더 대왕(Alexander the Great)'이라고 부르는 저 마케도니아 출신 정복자의 이름은 그리스어로는 `알렉산드로스 오 메갈로(Alexandros O Megalo)'다.

`알렉산드로스'는 `인민(andros)의 수호자(Alex)'라는 뜻이다.

정복자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신이 되고 싶어하던 인간이었는가. 대왕 자신은 어떠했는지 짐작하기 어렵지만 주위에 그의 신격화가 진행되고 있었다는 증거는 얼마든지 있다.

사람들은 알레산드로스를 신과 동일한 인간, 디오뉘소스 신과 동일한 인간으로 격상시키고 싶어했다.

왜 하필이면 디오뉘소스인가. `디오뉘소스'가 무슨 뜻인가. `뉘사에서 온 제우스'라는 뜻이다. 디오뉘소스는 인도 땅 뉘사 산에서 그리스로 온 신이다. 알렉산드로스는 인도 원정길에 그리스에서 뉘사로 간 인간이다.

"알렉산드로스가 `뉘사라는 곳(a place called Nysa)'을 포위 공격할 때의 일이다…."

`영웅열전'의 저자 플루타르코스는 뉘사를 이렇게만 언급하고 있다. 그는 이 `뉘사'라는 지명이 지니는 어마어마한 의미, 뉘사가 태동기의 헬레니즘과 유구한 힌두이즘의 접점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음에 분명하다.

플루타르코스는,알렉산드로스의 군대가 뉘사에서 그리스로 귀환할 때의 행렬은 차라리 디오뉘소스의 귀환과 다를 바가 없었다고 쓰고 있다. 알렉산드로스가 여덟 필의 말이 끄는 거대한 마차 위의 누대에서 장군들과 함께 주야를 가리지 않고 주연을 베풀었다는 것이다. 페르시아에 이르렀을 때는 장군들을 모아 한 탈란트짜리 금관을 현상(懸賞)하고 술시합을 벌이게 했는데 포도주 12쿠오트(일곱 되)를 마신 이 시합의 승리자는 금관을 쓰고 사흘을 좋아하다가 죽었다고 한다. 카레스의 기록에 따르면 시합의 후유증인 술병으로 죽은 장군이 물경 41명에 이르렀다.

'헬레니즘-힌두이즘의 접점'뉘사 원정

알렉산드로스가 그리스 본토로 개선했을 당시 도시국가 연합이었던 코린토스회의는 그가 그리스 여러 도시국가의 내부 문제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조건에 합의한다면 신격(神格)을 허용하자고 제안했다.

테마테스는, 알렉산드로스를 올륌포스의 13번째 신으로 인정하되, 인도로부터 술냄새를 풍기며 돌아온 그를 주신(酒神) 디오뉘소스의 화신(化身)으로 숭배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 제안을 두고 `개같은 내 인생(Cynicos Bios)'을 노래하던 견유철학자(Cynicist) 디오게네스는 이렇게 빈정거렸다고 한다.

"저 친구들이 알렉산드로스를 디오뉘소스의 화신이라고 한 다음에는 틀림없이 이 디오게네스를 세라피스의 화신이라고 할 테지."

`세라피스'는 디오뉘소스보다는 신격이 까마득히 높은 이집트 신이다.

알렉산드로스가 지금의 이란 땅 어느 어름에 속하는 액바타나에서 세상을 떠난 것은 기원전 323년, 그의 나이 서른세살 때의 일이다. 그는 그리스 신들의 존재를 믿고 있었던 것일까.

도시 국가 아테나이(지금의 아테네)의 정치가 페리클레스가 아크로폴리스에 아테나 여신의 신전 파르테논을 건설한 것은 기원전 432년이다. 페리클레스시대의 그리스인들에게 아테나는 분명하게 살아 있는 아테나이의 수호여신이었다.

소크라테스가 그리스의 인격신들을 부정하는 데서 출발, `너 자신을 알라'를 화두로 무지의 자각을 통한 진정한 인식의 세계에 이르러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그 직후의 일이다. 소크라테스는 그리스인들을 깨우쳤다. 비를 내리는 것은 제우스 신이 아니라 구름이라고 깨우쳤다. 그는 만일에 제우스 신이 비를 내리는 것이라면 마른 하늘에서도 비가 내려야 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그를 기소한 자들은, 아폴론과 아르테미스의 화신이라는 믿음을 뒤집은, `태양과 달은 돌덩어리, 흙덩어리'라는 그의 발언을 문제삼았다. 그러던 그가 사약을 받고 세상을 떠난 것은 기원전 399년의 일이다. 소크라테스의 수제자 플라톤도 그리스 인격신들을 믿지 않았다. 그는 신들을 부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신들에 대한 사랑과 신들로부터 오는 영감을 노래하는 시인들까지 싸잡아 비난했다. 그 플라톤의 뒤를 잇는 철학자가 아리스토텔레스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마케도니아 왕실의 가정교사였다. 그가 그 왕실에서 가르친 열네살짜리 소년, 이따금씩은 스승에게 대드는 것도 서슴지 않던 소년이 바로 뒷날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이다.

알렉산드로스는 그러니까 고대 그리스의 신들에 대한 믿음이 급격하게 식어 버린 세상,새로운 신이 도래하지 못한 세상의 영웅이었다. 새로운 신의 도래를 목마르게 기다리던 사람들에게, 인도를 정벌함으로써, 당시까지 알려져 있던 세계의 대부분을 헬레니즘(알렉산드로스 이후의 그리스문화)으로 휘감아들인 알렉산드로스를 당연히 신격화하고 싶었을 것이다.

페르시아와 인도 정벌에서 돌아온 알렉산드로스가 서른세살의 나이에 술로 세월을 보내고 있을 때의 일이다. 알렉산드로스의 시종이 용포차림에 왕관을 쓰고 왕좌에 앉아 있는 낯선 사내를 발견하고는 누구냐고 묻자 낯선 사내가 대답했다.

스승 아리스토텔레스에 대들던 소년이...

"나는 디오뉘시오스(!)라는 사람인데, 메세나에서 죄를 짓고 페르시아로 잡혀와서 오래 옥에 갇혀 있었소. 그런데 문득 세라피스 신이 나타나서 사슬을 풀어준 뒤 나를 이리로 데려오더니 용포를 입히고 왕관을 씌우고는 왕좌에 가만히 앉아 있으라고 하더이다."

이 말을 전해 들은 알렉산드로스는 즉시 그 낯선 사내를 죽이게 했다. 죽인 다음에야 그는 신들이 자기를 저버렸다면서 땅을 치고 후회했다. 사내가 말하는 세라피스 신이 곧 디오뉘소스 신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이 낯선 사내가 당한 일은, 최초의 디오뉘소스 교도(敎徒) 아코이테스가 그리스 땅에서 당했던 일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아코이테스는 죄지은 일도 없이 펜테우스 왕의 감옥에 갇혀 있다가 디오뉘소스에 의해 똑같은 방법으로 풀려났던 뱃사람이다.

그로부터 한달 뒤 그는 고열로 신음하다가 갈증을 이기려고 마신 술에 취해 광란하다 죽었다. 재위 13년째 되던 해 6월13일 해질 무렵이었다.

<이윤기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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