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헤라 이야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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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이복근 (211.♡.20.21) | 작성일 | 08-04-18 18:46 | ||
몸이 단 제우스에 "날 원하거든 결혼부터"
이달 초 젊은 소설가 이만교가, 제명이 당돌하기 짝이 없는 소설, `결혼은 미친 짓이다'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축하해 주려고 시상식장에 나갔다. 문학상 시상식에는 뒤풀이가 따르게 마련이다. 뒤풀이 자리에서 보니 소설가 이만교의 아름다운 아내와 예쁜 딸이 와 있었다. 심사를 담당했던 소설가 이문열이 부러 머쓱해 하면서 내뱉은 듣기 싫지 않은 한 마디. "작가상 심사위원들, 속아도 오지게 속았네." 고대 그리스 인들은, `결혼'이 젊은 소설가의 상상력이 당돌하게 함부로 부정해도 좋은 그런 허술한 제도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팔난봉꾼 제우스의 곁에는, 도끼눈을 하고 지아비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는 질투의 화신이자 신성혼(神聖婚)의 수호여신인 헤라가 있다. 헤라는 조직적으로, 제도적으로 제우스의 일탈을 봉쇄하는데, 이 여신의 신격(神格)은 바로 고대 그리스인들의 결혼관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는 듯히다. 헤라는 제우스가 점잖게 굴때는 아름다운 아내의 자리에 머문다. 하지만 제우스가 신성혼의 궤도를 벗어나면 두억시니를 방불케 하는 무서운 복수의 화신으로 둔갑한다. 서양 사람들에게 6월은 `유노(Juno)'의 달이다. 유노는 헤라의 라틴 이름이다. 따라서 6월은 곧 헤라의 달이다. 라틴어를 쓰던 로마인들은 6월을 `이우니우스(Iunius)'라고 불렀다. `유노의 달'이라는 뜻이다. 프랑스인들은 `유농(Junon)' 영어권 사람들은 `준(June)' 독일인들은 `유니(Juni)'라고 부른다. 인구어(印歐語, Indo-European Language) 전통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그리스에서는 아무래도 `헤라'와 관련된 이름을 쓸 것 같지만 아니다. 역시 `유노'의 달, `이우니오스(Iunios)'다. `유노'라는 로마 이름을 그리스가 역수입한 것이다. 6월에 결혼하는 신부를 영어권에서 `유월의 신부(June bride)'라고 돋워 불러준다. 6월이 아름다운 달이기는 하다. 하지만 신성혼의 수호여신 유노, 즉 헤라의 달이니, 좋은 계절 이상의 의미가 있는 셈이다. 헤라는 아름답다. 신화 작가 헤시오도스의 상투적인 표현을 빌리면, 헤라의 머리카락은 `전아우미(典雅優美)'의 화신인 카리테슨 세 여신이 다듬어주고, 헤라가 입는 옷의 감은 지혜의 여신이자 직조(織造)의 여신이기도 한 아테나가 짜준다. 헤라가 계절의 화신인 호라이 여신들의 도움을 받아 머리단장, 몸단장, 옷단장을 하고 나서면 제우스조차 "신과 인간을 통틀어 이토록 나의 애간장을 녹여놓는 여성은 일찍이 없었다"고 했단다. 헤라는 제우스보다 먼저 태어난, 따라서 제우스의 누나다. 하지만 아버지 크로노스의, 자식을 삼켜 버리는 괴망한 버릇 때문에, 제우스보다 나중 자란 누나, 따라서 손아래 누이이기도 하다. 헤시오도스가 전하는, 헤라가 태어나는 장면에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대목이 있다. 바로 헤라가, 사모스 섬의 암브라소스 강가의 `버드나무'밑에서, 왼손에 `석류'를 한 알 쥔채로 태어났다고 하는 대목이다. 그 많은 나무중에서 하필이면 왜 버드나무였으며, 그 많은 실과 중에서 하필이면 왜 석류였던 것일까. 신화를 해석함으로써 이름을 붙이고, 이름을 붙임으로써 그 넓은 뜻을 비좁은 이름에 가두는 짓을 삼가는 입장을 접고, 이것만은 재미삼아, 조심스럽게, 아주 조심스럽게 해석해본다. 어린시절 이런 속요(俗謠)를 들은 적이 있다. `남산세류불우습, 북산황률불봉탁(南山細柳不雨濕, 北山黃栗不棒坼).' `남산의 능수버들은 비가 오지 않아도 절로 습하고, 북산의 누런 밤은 몽둥이질하지 않아도 절로 벌어진다'는 뜻이다. 이 속요에 등장하는 `버드나무'와 `황률'은 여성 성기를 은유하고 있는 것같지 않은가. 민요 `천안삼거리'의 노래말 중의 `천안삼거리, 흥, 능수야 버들이, 흥'은 어떤가? `비가 오지 않아도 절로 습'하다는 남산의 세류와 무관한 것일까? 헤라 신화에 등장하는 `석류'는 두드리지 않아도 절로 벌어진다는 `북산 황률'과 동일한 은유라고 할 수는 없을까. 아름다운 처녀 페르세포네가 저승의 신 하데스에게 납치당해 저승으로 끌려갔을 때의 일이다. 처녀의 어머니 데메테르가 제우스에게 딸을 되찾게 해줄 것을 탄원했을 때 제우스는 이런 판결을 낸 적이 있다. "그대의 딸이 저승에서 입 다신 것이 없다면 모르겠지만, 만일에 무엇이든 먹은 것이 있다면 나도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알아보니, 처녀는 저승에서 먹은 것이 있었다. 바로 석류 한알이었다. 맛보면 부끄러움을 알아 선과 악을 능히 가릴 줄 알게 한다는 저 구약시대의 선악과(善惡果)는 사과란다. 하지만 사과라고 해도 석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석류(pomegranatum)가 무엇인가. 바로 사과는 사과이되 `내부에 씨앗을 두드러지게 내장한(granatum)' `사과(pome)'인 것이다. 저절로 껍질을 열고 알을 내보이는 석류는 건강하게 불온하고 불온하게 건강하다. 눈밝으신 미당(未堂)선생이 석류를 그냥 보아넘겼을 리 없다. `석류개문(石榴開門)'이라는 제하에 그는 석류를 이렇게 노래한다. 공주님 한창 당년 젊었을 때는 / 혈기로 청혼이사 나도 했네만, / 너무나 청빈한 선비였던 건 / 그적에나 이적에나 잘 아시면서 / 어쩌자 가을 되어 문은 삐걱 여시나. 신화가 전하는, 천하의 난봉꾼 제우스와 아름다운 처녀 헤라가 처음으로 정교(情交)하는 대목이 재미있다. 등잔 밑이 어둡기는 어두웠던 모양이다. 선대(先代) 여신, 당대(當代) 여신은 물론이고, 급이 낮은 신녀(神女), 산하(山河)의 요정, 양가의 요조숙녀, 심지어는 유부녀까지 걸터듬던 제우스는 뒤늦게야 누나이자 누이인 헤라의 아름다움에 눈뜨게 되었다. 그는 헤라에게 사랑을 졸랐다. 하지만 그의 행실을 잘 아는 헤라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헤라는 법적ㆍ제도적 구속력이 있는 정식 결혼이라는 제도를 요구했다. 몸이 달대로 단 그에게도, 헤라가 요구하는 신성혼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이었다. 그로서는 신성혼 소리를 듣는 순간, 달아올랐던 몸이 싸늘하게 식었을 법하다. 그런데 그런 제우스에게 절호의 기회가 온다. 혼자서 에우보이아지방의 산길을 헤매고 있던 헤라가 제우스의 눈에 띈 것이다. 기후의 신 제우스는 그 산에다 소나기를 퍼부으면서 자신은, 날개가 하나 부러진 뻐꾸기로 둔갑하고 헤라에게 접근했다. 헤라가 소나기에 흠뻑 젖은, 한쪽 날개가 부러진 뻐꾸기를 가엾게 여기고 치맛말로 비를 가려주는 순간, 제우스가 본색을 드러내었다. 보는 이, 듣는 이가 없는 깊고 깊은 산중이었다. 제우스에게는 절호의 기회였다. 헤라의 운명은 풍전등화였다. ZEUS & HERA Museum Collection: University Museum, University of Pennsylvania, Oxford, Pennsylvania, USA Catalogue No.: MS5462 Beazley Archive No.: 15295 Ware: Attic Red Figure Shape: Pyxis Painter: Name vase of the Heimarmene Painter Date: ca 450 - 400 BC Period: Late Classical SUMMARY Detail of Zeus and Hera from a painting depicting the wedding of Herakles and Hebe. The gods both hold royal sceptres in their hands. To their left stands Athene. 하지만 정반대되는 상황이었을 수도 있다. 된다커니 안 된다커니, 둘 사이의 실랑이가 있었을 법하다. 몸이 달대로 달아올라 어떻게든 뜻을 이루어 보려고 하는 제우스와, 구속력이 있는 신성혼을 약속하지 않는 한, 죽어도 치마끈을 풀 수 없다는 헤라 사이의 실랑이는, 그러나 오래 가지 않는다. 제우스에게도 목석같은 구석이 있어서, 헤라가 내건 조건이 지나치게 까다롭다고 해서, 내렸던 바지를 다시 올리고 유유히 돌아설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그게 그렇지 되지 않는다. 신화는 이로써 제우스를 헤라에게 묶어둔다. 하지만 그것은 드라마의 끝이 아니다. 시작이다. 갈등 없이는 발생하지 않는 것이 드라마이므로. <이윤기, 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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