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매프러다이트(Hermaphrodite)-양성인(兩性人)
작성자 이복근 (21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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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사타구니에 남성의 상징이 씩씩하게 융기해 있다.

독자들은 대장장이 신의 그물에 발가벗은 채로 갇힌 아프로디테를 보고 헤르메스가 침을 꿀꺽 삼키던 일을 기억할 것이다. 무신(巫神) 아폴론이 그물에 갇힌 애욕의 여신과 전쟁신을 내려다 보면서 헤르메스에게 “아프로디테와 함께 갇혀보고 싶으냐”고 물었을 때 그는 침을 삼키면서 이렇게 응수했다.

“그물이 세 곱절쯤 질겨도 좋겠소.” 헤르메스는 구변이 좋고 거짓말을 표 안나게 잘해서 상업·도박·돈놀이·조약 체결 같은 것을 관장하는 신이고, 발이 빨라 제우스의 사신 및 저승 세계의 길잡이 노릇도 하며, 한시도 쉬지 않고 몸을 움직임으로써 체육을 진흥하는 신이기도 하다.

아폴론은 애욕의 여신이 언젠가는 헤르메스를 꾀게 될 것임을 무신답게 꿰뚫어 보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아프로디테와 헤르메스는 태음월(太陰月) 초나흘로 생일이 같다. 그런데 어느 태음월 초나흗날, 올리브 나무 아래 누워 깜빡 잠이 들었던 헤르메스는 배위로 심상치 않은 무게를 느끼고 눈을 떴다. 눈을 떠보니, ‘아프로디테 포르네(음란한 아프로디테)’가 이름 값을 하고 있었다.

반듯이 드러누워 있던 헤르메스의 씨를 엎드려서 받은 아프로디테는 아들 둘을 지어 낳았는데, 먼저 낳은 아들은 헤르마프로디토스, 나중에 낳은 아들은 나중에 언급할 에로스다. 먼저 낳은 아기는 아비가 기르고, 나중 낳은 아들은 어미가 기르기로 했다. ‘헤르마프로디토스’, 발음하기에도 쉽지않은 이름이지만 ‘헤르메스’와 ‘아프로디테’의 이름을 합성한 남성명사이다.

헤르메스는 워낙 바쁜 신인지라 자신이 기르기로 한 첫 아들을 숲속 요정들에게 맡겼다. 미남신과 아름다움의 여신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었으니 용모가 얼마나 준수했겠는가. 숲의 요정, 강의 요정들이 소년을 그냥 두지 않았을 법하다. 소년은 열다섯살 때 해괴한 봉변을 당하는데, ‘변신이야기’에서 그 대목을 옮겨본다.

‘열다섯 살이 되던 해, 소년은 자기를 키워준 정든 산을 떠나 세상 구경, 낯선 산수 구경하러 나그네 길에 올랐다. 길 가는 도중에 소년은, 물이 어찌나 맑은지 바닥까지 훤히 들여다 보이는 호수를 만났다. 호수에는 이름이 살마키스라고 하는 아리따운 요정이 살고 있었다. 사냥도 할 줄 모르고, 활도 쏠 줄 모르고, 달음박질에도 재주가 없는 그 요정은 틈만 나면 회양목으로 만든 빗으로 머리를 빗고 수면을 거울삼아 내려다 보면서 머리 모양을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바꿔보고는 하다가 재미없으면 알몸이 비치는 옷을 입은 채 부드러운 풀밭에 드러누어 하늘을 보기도 했다. 이따금씩은 꽃도 꺾었다. 꽃을 꺾다가 요정은 소년을 처음 보았다.

소년을 보는 순간 요정은 견디기 어려운 욕정을 느꼈다. 요정은 금방이라도 달려가고 싶었지만 초면에 그럴 일이 아니어서 마음이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울렁거리는 가슴도 진정시키고 표정도 예쁘게 지어보고 하면서, 자신의 예쁜 모습을 보여줄 준비를 했다. 이윽고 준비가 끝난 요정은 소년에게 다가가 말을 붙였다.

“여보세요. 혹시 신이 아니신지 모르겠네요. 신이시면 에로스 신이실 테지요? 인간이시라면, 그대의 부모형제들은 복 받은 분들. 누이들이 있다면 역시 복을 받은 분들. 그대에게 젖을 빨린 유모가 있다면 그 분도 큰 복 받은 분. 하지만 그 분들이 받은 복을, 그대와 혼인을 약속한 처녀가 받을 복에 어찌 견줄 수 있을까요? 그런 처녀가 있다면 말이지요. 그런 처녀가 있으면, 그 처녀 몰래 가만히라도 좋으니 나를 좀 사랑해주세요. 없어서 나를 애인 삼아 주면 이보다 좋은 일이 없을 테지요. 나를 사랑해주세요. 나와 혼인해 주세요.” 소년은 얼굴을 붉혔다. 그는 사랑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요정은 입이라도 맞추어 주려고 누나처럼 다가가 목을 껴안았다. 소년은 비명을 질렀다. 뜻밖의 반응에 놀란 요정은 “싫으면 그만 두겠어요. 귀찮게 하려고 이러는 것은 아니니까.” 그러고는 돌아섰다. 그러나 요정은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버짐나무 뒤에 숨어 엿보고 있었다.

더위에 시달리고 있던 소년은 요정이 사라진 줄 알고 물에 들어가려고 옷을 벗었다. 아름다운 몸매가 드러났다. 살갗이 투명한 병속에 넣어둔 상아 같았다. 엿보고 있던 요정의 몸은 불덩어리같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요정은 도저히 견디지 못하고 물 속으로 따라들어가 소년을 붙잡고, 앙탈을 부리는 소년에게 입을 맞추었다. 그러고는 손으로 소년의 가슴과 등을 쓰다듬으며 몸에 달라붙었다. 소년은 몸을 빼려고 했다. 요정은 소년이 이쪽으로 피하면 저쪽에서 달라붙고 저쪽으로 피하면 이쪽에서 달라붙었다. 소년은 힘을 다해 저항하면서, 요정이 그렇게 맹목적으로 집요하게 요구하는 사랑의 쾌락을 거절했다. 어머니가 생육의 여신, 맹목적인 애욕의 여신 아프로디테라는 것도 잊고 거절했다. 하지만 소년이, 요정의 공격을 어찌 피할 수 있으랴. 이 둘은 결국 한덩어리가 되고 말았다. 요정은 온 힘으로 달라붙으면서 기도했다.

‘오 신들이시여. 맹목적인 사랑의 여신이시여, 이대로 있게 하소서. 이 소년이 영원히 저에게서, 제가 이 소년에게서 떨어지지 않게 하소서.’ 잠시 붙어있던 이 둘의 육체가 하나로 되었던 것을 보면 신들이 요정의 기도를 들어주었던 모양이다. 둘의 몸은 곧 붙은 자국도 보이지 않는, 진짜 하나가 되었다. 남성이라고 할 수도 없고 여성이라고 할 수도 없는 하나의 육체, 남성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고 여성이 아나라고 할 수도 없는, 그러니까 남성과 여성을 두루 갖춘 하나의 육체가 되었다.

살마키스가 등장하지 않는 신화도 있다. 헤르마프로디토스가 사냥에 재미를 들일 나이가 되자 기묘한 현상이 이 소년의 몸에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색정적인 숲속 요정들의 음기가 원래 사내아이로 태어난 그의 몸에 동화되자 사타구니를 비롯해서 온몸에 남성과 여성의 괴망한 성징(性徵)이 동시에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남성과 여성의 성징을 두루 갖춘 ‘안드로귀노스’, 즉 양성(兩性)을 두루 갖춘 자웅동체(雌雄同體)가 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말로는 이런 사람을 남녀추니, 어지자지, 혹은 불씹장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안드로귀노스’와 ‘어지자지’는 조금 다르다. 어지자지는 여성의 성기속에 또 하나의 남성성기를 숨기고 있는 양성인을 말한다. 그러나 헤르마프로디토스는 완벽하게 아름다운 남성의 몸매와 여성의 몸매를 두루 갖추고 있었다. 양성인을 의학에서는 ‘앤드러자인(Androgyne)’ 혹은 ‘허매프러다이트(Hermaphrodite)’라고 하는데 이 두단어는 각각 그리스어 ‘안드로귀노스’와 ‘헤르마프로디토스’의 영어식 발음이다.

대극하는 두 개념으로 관념을 이원화(dualize)하던 서양 문화의 한 정점에 남녀를 통합하는 어지자지의 신화가 자리잡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가. 그로부터 기나긴 세월이 흘렀다. 이제 헤르마프로디토스의 몸에 깃들인 살마키스는 남성들 마음 속의 여성상 ‘아니마’가 되었고, 살마키스의 몸에 깃들인 헤르마프로디토스는 여성들 마음 속의 남성상 ‘아니무스’가 되었다. 카를 융에 따르면, 사람은 자신의 아니마 및 아니무스와 화해하지 않고는, 그림자와 화해하지 않고는 전체성을 획득할 수 없다.

새로운 밀레니엄 목전에 와서야 겨우 사람들은 ‘신토불이(身土不二)’, 곧 윤회의 과정에서 얻는 육신과 국토가 다르지 않다는 미시적(微視的) 깨달음에 이르렀다. 남녀가 다르고, 자연과 인간이 다르고, 물질과 정신이 다르랴. 원래 신들이 그렇듯이 헤르마프로디토스는 남성에게는 여성이요, 여성에게는 남성이다.

-이윤기의 신화기행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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