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는 울산 문화유산]치열했던 투쟁의 역사 기억하는가
작성자 이복근 (211.♡.20.43)
남창 3·1의거 기념비와 충의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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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 전 만세소리 울렸던 남창장터 삶의 열기 가득
온양초 체육관 앞 기념비 새싹들 웃음소리 울려퍼져
임진왜란 의병장 전응충 추모 충의각 화재 후 복원




5·18이 지난지 얼마되지 않았다. 4·19가 그러하듯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28년이 지난 역사적 사건이 되었지만, 유족들의 원망과 안타까움은 풀리지 않은 채 여전히 한으로 남아있다.

이러한 아픔의 역사는 결코 슬픔으로 끝이 나지는 않는다. 5·18을 밟고 일어선 신군부는 5·18을 기억하는 이들의 저항으로 점점 힘을 잃어 갔고…. 그렇게 우리는 민주화를 경험했다. 이렇듯 역사의 거대한 물줄기는 앞서간 이들의 희생을 먹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더 앞선 시기에도 그랬다. 일본제국주의의 침략으로 한국이 식민지가 되고나서 1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 뒤 손으로 직접 만든 태극기를 들고 대열을 이루어 만세운동을 벌여나간 이들이 있었다. 이들은 조선의 전체인구 가운데 10분의 1이 넘는 사람들이었다.

1919년 2월 일본에 의해 황제자리에서 강제로 쫓겨났던 고종이 사망하였을 때, 조선 사람들은 고종의 죽음을 의심했다. 뭔가 음모가 숨어있다고…. 게다가 미국의 민족자결주의와 소련의 민족자결의 원칙이 한국인들에게 전해졌고, 여기에 9년간의 식민지 경험이 더해졌다.

서울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은 고종의 장례에 참석하러 서울을 방문했던 이들과 종교조직, 학생들의 노력으로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울산도 예외는 아니었다. 언양의 천도교인들은 서울본부와의 연결 속에서 운동을 준비하여 4월2일 시위를 벌였고, 서울에서 내려온 유학생들에게서 소식을 들은 병영청년회 청년들은 4월4일과 5일에 만세시위를 벌었다. 이들 만세운동은 바로 남창의 만세운동으로 연결되었다.

남창의 3·1만세운동은 4월8일에 일어났다. 전국 대부분의 지역이 그러하듯, 이날은 장날이었다. 만세시위는 사전에 준비된 것이었다. 주동인물들은 석천리에 사는 이씨 문중의 청년들이었다. 고종의 장례식에 참여했다가 돌아온 이재락이 문중어른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문중의 어른들은 통고문을 만들어 문중 청년들을 모았다. 이수락, 이희계, 이쾌덕, 이용락이 주도가 되었다. 이쾌경이 뒤늦게 참여했다. 이들은 남창 장날인 4월8일을 만세시위일로 잡았다.

드디어, 날이 밝았다. 이들은 이른 아침 남창 장터에 들어섰다. 장꾼들이 모여들길 기다렸다. 이들에게는 전날 비밀리에 만든 태극기가 숨겨져 있었다. 그러나 기회는 쉬이 오지 않았다. 이미 일본경찰은 울산 주변뿐 아니라 언양과 병영의 만세운동 소식을 듣고 삼엄한 경계를 하고 있었다.

오후 4시경 드디어 때가 왔다. 주동자들은 장꾼들에게 태극기를 나눠주고 독립만세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150여명의 장꾼들이 합세하여 시위행진을 했다. 놀란 일본경찰은 공포를 쏘며 주동자 검거에 나섰고, 이용락을 제외한 4명이 검거되었다. 몸을 피한 이용락은 인근의 포목상으로 달려가 '대한독립만세'라고 쓴 깃발을 만들어 들고 나와 만세시위를 이어갔다. 결국 이용락을 비롯한 5명이 더 붙잡혔다. 9명 중 7명이 실형을 선고받아 감옥살이를 했다.

2008년 5월18일, 이날도 장날이다. 남창장 앞에 섰다. 사람이 모이고 물건이 오가고, 그 위에 세상 소식이 오가는 그 자리에 선 것이다. 온갖 얘기들과 흥정이 오갔고 마침내 오후 4시가 넘어 장터는 이미 파장분위기다.

장터의 모습에서 옛일을 연상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90년 전, 군데군데 보이는 일본경찰의 움직임을 주시하며 오가는 장꾼들의 모습을 긴장과 설레임으로 지켜보았을 그들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남창 장터를 뒤로 하고 옛 버스정류장을 지나 온양초등학교 앞으로 갔다. 시멘트 건물 가운데 남은 허름한 작은 기와집은 여전히 버스를 기다리는 이들에게 간단한 먹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물론 상점으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면서.

온양초등학교 체육관 앞에는 '남창 3·1의거기념비'가 떡하니 앉아있다. 1995년에 세웠다고 한다. 기념비 주변은 아이들의 좋은 놀이터다. 변함없이 아이들은 뛰어다니며 재잘거린다. 치열했던 역사 현장에서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다. 이들도 얼마 지나지 않으면 잊혀지지 않는 역사현장을 찾는 청년으로 자라나겠지. 아마도 일본주재소가 있었던 자리에 세워진 이 기념비 앞에서 조용히 머리 숙일 것이다. 이 땅의 역사와 문화를 지키며 치열하게 살아갔던 많은 이들을 생각하며.

3·1의거기념비를 남겨두고, 온양초등학교 교문을 지나 온양읍사무소 앞마당으로 들어섰다. 읍사무소 왼쪽으로 돌아가니 저 뒤에 기와를 얹은 작은 집이 있다. 충의각이다. 아는 이들만 찾겠다 싶다. 담장은 시멘트로 발라져 있고, 그 안쪽에 한 칸짜리 사당이 있다. 사당의 주인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이었던 전응충이다.

그는 김태허를 중심으로 3000여명이 의병으로 궐기하였을 때 남면장으로서 양산과 기장 쪽에서 침략해 오는 왜적을 막아내고, 정유재란 때 서인충 등과 함께 곽재우 부대에 합류하여 왜적과 전투를 벌이기도 했다. 조선 선조 때 세워진 본래 사당 안에는 전응충의 유품이 보관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970년 화재를 입었고, 이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오늘도 우린 한 때 치열한 일상을 살았던 이들을 만났다. 과거 역사의 현장에서 치열하게 살아간 그들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가 있고, 아이들은 우리의 일상의 경험과 실천을 과거로 하여 자신들의 삶들을 여전히 치열하게 살아갈 것이다.

글·사진=원영미(내림터사랑)
<발췌: 경상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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