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로디테와 아도니스
작성자 이복근 (21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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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비디우스는 아프로디테를 이렇게 노래한다.

‘사랑으로 가려 눈을 멀게 하지를 않나, 욕정으로 눈을 가려 사련(邪戀)에 미치게 하지를 않나, 처녀 메데이아와 아리아드네는 아비의 왕국을 이국의 청년에게 바쳤고, 유부녀 헬레네는 지아비의 손님에게 이끌려 제 집과 나라를 떠났다. 스뮈르나는 미친 사랑에 눈이 멀어 제 아비의 잠자리에 들었고 파시파에는 황소와 더불어 사랑했다. 참 가괴(可怪)로다, 아프로디테의 장난은….’ 아프로디테는 시인의 말마따나 참‘괴이하게 여겨지는’여신이다. 아프로디테는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여신인 동시에 살아있는 것들을 지배하는 무서운 생식의 기운이다. 짝짓기가 끝나면 사마귀 암컷은 수컷을 잡아먹는다. 아프로디테에서 아들 에로스로 이어지는 에로티시즘의 본질은 사마귀 암수의 운명이 그렇듯이 죽음으로의 다가감이다. 아프로디테는 질투의 여신이기도 하다. 아프로디테를 질투하게 하면 그 끝은 죽음이다. ‘아프로디테 포르네(음란한 아프로디테)’에게 휘둘려 함부로 ‘포르노’에 빠질 일도 아니다. 그 끝도 작은 죽음이다. 한번 휘둘리면 되돌아나오는 길은 없다시피하다.

옛날 소아시아의 작은 왕국에 테이아스라는 왕이 있었다. 이 왕의 왕비는 딸을 하나 참하게 길러놓고 입버릇삼아 이런 말을 하고는 했다.

“아프로디테 여신이 아름답다고 한들 설마 우리 스뮈르나만 하랴.” 아프로디테가 그 소리를 들었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어디 보자… 질투하는 여신은 아들 에로스를 시켜, 스뮈르나에게 화살 한 대를 쏘게 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에로스에게는 두 종류의 화살이 있다. 금화살과 납화살이다. 금화살을 맞으면 처음 보는 이성을 사랑해야 하고, 납화살을 맞으면 처음 보는 이성에 대해 심한 혐오감을 느끼지 않으면 안된다. 에로스는 어머니가 시키는대로 스뮈르나에게 금화살 한 대를 날렸다. 그런데 그 화살에 맞은 스뮈르나가 처음 본 이성은 바로 아버지였다. 아버지에 대한 딸의 상사병은 날이 갈수록 깊어져 갔다.

유모가 사정을 눈치채고, 왕에게 인사불성이 되도록 술을 마시게 한 뒤 그 딸을 침전으로 들여 보냈다. 그날 밤 왕의 침전에서는 참으로 해괴한 일이 일어났다. 스뮈르나의 몸 속에서 아기가 자라고 있다는 것을 안 왕은 딸을 불러 아기의 아비가 누구냐고 물었다. 딸은 ‘아기의 아버지가 곧 아기의 외조부’라고 대답했다. 말귀를 알아먹은 왕은 창피하고 분한 마음에 칼을 뽑아 딸을 찌르려고 했다. 여신은, 딸을 범한 아비의 칼에 죽음을 당하기 직전, 아비의 씨를 받은 딸의 몸을 몰약나무(스뮈르나)로 바꾸었다. 여기까지가 스뮈르나 이야기다.

몰약나무 둥치속에서는 아기가 자라고 있었다. 아프로디테는 껍질을 열고 달이 덜찬 아기를 꺼냈다. 그런 다음에 이 아기를 상자에 넣어, “상자를 어두운 곳에다 두되 열어 보아서는 절대로 안된다”는 전갈과 함께 저승 왕비에게 보냈다. 이 아이가 바로 아도니스다. 셰익스피어의 장시 ‘베누스(아프로디테)와 아도니스’의 주인공으로 유명한 바로 그 아도니스다.

독자들은 벌써 짐작할 것이다. 열어보아서는 절대로 안되는 상자는 열리게 마련이다. 저승 왕비는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상자를 열어보았다. 아찔하게 아름다운 소년 아도니스가 그 안에 있었다. 저승 왕비는 그렇게 잘 생긴 아도니스를 상자 속에 묵혀두기가 아까워 이따금씩 저승왕 몰래 데리고 희롱했다.

아프로디테가 저승 왕비에게 아도니스를 돌려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저승 왕비는 거절했다. 저승 땅을 마음대로 오르락내리락 할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결국 여신은 제우스에게 탄원했다. 제우스는 아도니스에게 1년 중 넉달은 저승 왕비와, 넉달은 아프로디테와 머물게 했다. 나머지 넉달은 아도니스 자신에게 주어 운기조식하는 기간으로 삼게 했다.

하지만 아도니스는 저승 왕비에게 돌아갈 수 없었다. 아프로디테가 가지고 있던 케스토스 히마스(마법의 띠)에 홀린 아도니스가 저승 왕비를 까맣게 잊어버린 것이다. 저승 왕비는 아프로디테의 정부(情夫)인 전쟁신 아레스를 꼬드겼다. “아프로디테 여신은 아레스 신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자고새면 아도니스만 난잡하게 희롱해서 태양신이 다 낯을 붉힌다고 하더이다.” 저승 왕비가 아레스의 불뚝 성미를 건드려놓은 줄도 모르는 채 아프로디테는 아도니스를 달고 다니며 시도 때도 없이 숲속의 골풀 위에서 사랑을 나누었다. 아레스의 신수(神獸) 멧돼지는 아프로디테가 자리를 뜰 때만을 기다렸다가, 이윽고 고향으로 나들이한 틈을 타서 아도니스의 옆구리에다 엄니를 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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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편에 전갈을 받고 급히 숲으로 돌아온 여신은 아도니스의 주검에다 넥타르(神酒)를 뿌리고 꽃이 될 것을 축원하니, 여기에서 피어난 꽃이 바로 ‘아네모네(바람꽃)’다. 아도니스는 1년의 3분의 1은 땅속에서 머물고, 3분의 1은 생장하고, 3분의 1은 곡물의 형태를 취하는 씨앗의 운명을 상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월 초순, 저 유명한 트로이 유적지를 찾아가는 길에 터키 서부의 항구도시 이즈미르에서 하루를 머물렀다. 이즈미르는 에게해쪽으로 터진 하나의 원형극장같은 도시였다. 나는 ‘이즈미르’의 그리스 이름이 ‘스뮈르나’인 것에 한번 놀랐고, 그 스뮈르나가 트로이아의 전쟁을 노래한 저 호메로스의 고향이라는 데 두번 놀라고 말았다. 놀란 까닭은 다른데 있지 않다.

딸이 아버지의 잠자리에 들어 자식을 갖는다는 스뮈르나 이야기는 히브리적이다. 구약성서(창세기 19:31이하)의 다음 대목과 견주어 보자.

‘…언니가 아우에게 말하였다. “아버지는 늙어가고, 이 땅에는 우리가 세상의 풍속대로 시집갈 남자가 없구나. 그러니 아버지께 술을 취하도록 대접한 뒤에 우리가 아버지의 자리에 들어 아버지의 씨라도 받도록 하자.” 그날 밤 그들은 아버지께 술을 대접하고는 언니가 아버지 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딸이 언제 들어왔다가 언제 일어나 나갔는지 통 몰랐다. 그 이튿날… 아버지에게 술을 대접하고 이번에는 아우가 아버지 자리에 들었다… 큰 딸은 아들을 낳고 이름을 모압이라 하였는데 그 후손이 오늘날의 모압인이다. 둘째 딸도 아기를 낳고 이름을 벤암미라고 하였는데 그 후손이 오늘날의 암몬인이다’ ‘아도니스’는 그리스 말이 아니라, ‘주님(아도나이)’을 뜻하는 히브리말이라고 한다. 스뮈르나(몰약나무)의 진을 방향제, 방부제, 진통제로 쓰는 것도 히브리 사람들이다. 동방박사들이 아기 그리스도에게 바친 선물중 하나인 ‘몰약’은 그리스도가 장차 당하게 되는 고통의 상징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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