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단체예방접종, 건강관리업체가 기업과 짜고 싹쓸이
작성자 울산의사회 (61.♡.101.155)

단체예방접종, 건강관리업체가 기업과 짜고 싹쓸이

박리다매 저가 단체접종에 개원가 "우린 뭘 먹고 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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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중앙포토

#본격적인 독감 예방 시즌을 앞두고 울산 지역 동네의원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지난해의 악몽이 되풀이될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공업도시인 울산은 H기업의 영향권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동차, 조선, 중공업 등 H기업의 각종 계열사들이 분포해있으며, 지역민의 상당수가 H기업 사람들이다.

문제는 작년 H기업이 복리후생 차원에서 직원과 가족들의 무료 예방접종을 실시했는데, 특정 의료기관에 ‘몰아주기’ 형식을 취했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는 건강관리서비스업체인 O가 있었다. O업체는 지역 개원가의 접종비 보다 싼 가격으로 특정 병원들(중소병원급 이상)과 계약을 맺었다. 해당 병원들은 ‘박리다매’식으로 이익을 취한 반면, 그 지역 동네의원들은 평년에 비해 접종률이 30~50% 정도 감소해 큰 피해를 입었다. 그런데 올해도 이 같은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는 것.

한 의료계 관계자는 “O업체가 올해는 진찰료 수준에 해당하는 1만 2000원을 지역 병원에 접종가로 제안했다고 하더라. 울산 지역 의사회는 말도 안 된다는 입장이며, 이에 응하지 말 것을 의료기관에 당부하고 나섰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H기업 직원들의 단체접종 사업을 진행한 O업체는 H기업 일가인 것으로 알고 있다. 몰아주기 대상 중 하나였던 D병원 원장은 H기업 가족 구성원이라고 한다”며 “결국은 깨기 힘든 연결고리로, 울산 지역 의료계가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얘기가 돌고 있다”고 말했다.

대기업의 예방접종 ‘몰아주기’...안 그래도 힘든 동네병원 ‘타격’

단체예방접종으로 인해 개원가가 골머리를 앓고 있다. 아파트, 교회, 유치원 등을 중심으로 이뤄진 출장형 단체접종이 한동안 잠잠한 듯 했으나, 울산 지역에서 몰아주기형 단체접종으로 큰 피해를 입으면서 단체접종에 대한 고민이 또 다시 불거져 나오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백경우 의무이사는 “저가 단체접종의 움직임은 여전하다”며 “울산처럼 규모가 큰 사례도 있는가 하면, 소소하게 소규모로 이루어지고 있는 단체접종도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 불법인 출장 접종도 여전하다”고 말했다.

현행법상 아파트, 교회 등을 돌며 진행된 출장형 단체접종만이 불법에 해당한다. 보건복지부는 무분별한 단체접종을 금지하기 위해 2011년 7월 ‘예방접종의 실시기준 및 방법에 관한 고시’를 개정했다. 예방접종을 보건의료기관 안에서만 행도하도록 장소를 제한한 것이다.

하지만 건강관리업체가 특정 의료기관과 계약을 맺고 단체접종을 유도하는 행위는 문제되지 않는다. 백 의무이사는 “울산 단체접종 사례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와 복지부에 위법 여부를 문의했으나, 직원들의 복리후생 차원이라 크게 문제 될 것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말했다.

의료기관 내에서 진행되는 몰아주기식 단체접종에 대한 개원가의 피해가 크지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통 큰 할인’ 저가접종, 소비자는 반가운데...개원가는 ‘죽을 맛’

저가접종도 마찬가지다. 대한개원내과의사회 조현호 의무이사는 “일부 보건의료기관과 사무장병원이 주도하고 있는 저가예방접종 문제도 심각하다”고 말했다.

개원가에서 독감예방접종 비용이 평균 2만5000~3만원이지만, 해당 기관은 1만2000원, 심지어는 1만원 이하로 ‘통 큰 할인’을 감행해, 예방접종 기간 동안 많게는 수만 명에게 접종을 시행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저가예방접종을 시행하고 있는 단체로는 건강관리협회, 인구보건복지협회 가족보건의원, 한국의학연구소 등이 꼽힌다.

이를 두고 의협 백 의무이사는 “대형마트와 소규모 영세 상인이 맞붙어 경쟁하는 꼴”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접종 비용은 진찰료와 백신가, 인건비, 보험료 등을 합해 산정된다. 그런데 백신을 대량 구매하는 곳일수록 제약사의 백신 공급가가 저렴해진다. 상대적으로 정상가로 백신을 구매하는 동네의원의 접종 비용이 비싸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백신 대량 구매로 저가접종을 시행하는 기관을 동네의원이 당해낼 수 없다는 것.

물론 소비자의 입장에선 저렴한 예방접종을 환영할 만하다. 실제 190만 명 이상의 회원을 보유한 육아관련 커뮤니티인 ‘맘스홀릭 베이비’에서는 선택접종 저렴한 병원에 대한 정보 공유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 중 자주 언급되는 곳 중 하나가 인구보건복지협회 가족보건의원이다.

이에 대해 가족보건의원 관계자는 “예방접종은 비보험이기 때문에 주체의 책정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며 “우리 단체는 전국 지회가 백신을 대량으로 구입한다. 또 이윤창출보다 공공의료서비스 목적이 강하기 때문에, 개인병원보다 마진폭을 적게 해서 상대적으로 접종 비용이 저렴한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구조적으로 공정경쟁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개원가의 주장이다.

개원내과의사회 조 의무이사는 “대형의료기관에서 저가예방접종이 가능한 것은 사단법인으로 개원가에 비해 접종 후 이익에 대한 낮은 세율이 붙기 때문이다. 구조적으로 공정경쟁이 불가능해 저가접종을 하는 기관 근처의 개원가(수백 군데)는 너무나도 많은 피해를 보고 있다. 한마디로 ‘초토화’된다고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현재 진행되는 공정경쟁, 골목상권 지키기에도 위배된다는 게 조 이사의 주장이다. 그는 “의료시장의 질서를 근본적으로 해하는 행위, 즉 의료법 27조 3항의 불법 환자유인행위로 볼 수도 있다. 국가적으로 볼 때도 소수의 기관이 저가접종을 통해 예방접종을 독과점 함으로써 걷혀야 될 세금이 제대로 걷히지 않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고 지적했다.

단체‧저가접종, 환자에게도 치명적인 ‘독’이 될 것

의료계는 단체‧저가접종의 폐해가 국민에게도 돌아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내과의사회 조 이사는 “너무 많은 양의 예방접종을 실시하다보면 백신의 완벽한 냉장보관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충분한 예진이 어려워 예방접종 후 이상반응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완벽한 냉장보관이 안 되는 경우에는 백신의 안정성과 효과에 문제가 있을 수 있어 결국 저가접종으로 인한 피해가 고스란히 저가접종을 받은 국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주장했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정해익 회장은 “접종 후 환자는 의료기관에 15~30분 머물며, 이상 반응이 없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하지만 많은 인원이 한꺼번에 몰리는 단체접종은 이를 생략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 경련이나 쇼크 등의 이상 반응이 나타나면 즉각적인 응급대처가 어려워 심각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의협에 따르면 이에 대한 명확한 통계가 없다. 의협 백 의무이사는 “불법 단체접종은 은밀하게 이뤄지고 있어 사후에 문제가 드러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서울시의사회, 불법 단체예방접종 근절 포상제 시행

그렇다면 단체접종에 대한 대안은 무엇일까. 내과의사회 조 이사는 “각 의료기관에 공급되는 백신의 양을 조절하는 것이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정 기관에 대량으로 백신이 공급되는 것을 막아 환자 쏠림을 예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의협 백 의무이사는 백신 공급가의 균형을 꼽았다. 그는 “대형의료기관과 작고 영세한 동네 의원의 백신 공급가가 크게 차이나지 않도록 공급하는 게 하나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또 “울산 H기업처럼 직원의 복리후생을 위해 단체접종을 실시하는 경우, 일부 특정 대형병원만을 대상으로 할 것이 아니라, 바우처 제도를 통해 동네의원 등 모든 의료기관에서 접종이 가능하게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의료계는 불법 단체예방접종을 막기 위해 본격적인 행동에 나설 방침이다. 서울시의사회와 서울시개원내과의사회 등 5개 단체는 건당 5만원이라는 포상금을 내걸고 환자 불법 유인행위에 대한 단속에 나섰다.

병의원이 아닌 장소 또는 의사의 진찰없이 단체로 예방접종 하는 경우, 특정 단체에서 예방접종 가격할인 안내문을 보내는 경우, 차량을 이용해 특정 병의원으로 이송하는 행위 등이 신고내용에 해당한다.

서울시의사회 임수흠 회장은 “이번 행보는 단순한 고발목적이 아니라, 불법단체예방접종 근절을 위한 것”이라며 “신고된 사례들은 사안별로 분류해 관련 기관에 적극 고발조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2013.07.08 (오경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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