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기사

김경승 마더스 병원장·정신과 전문의
 
온 사회가 중독의 바다에 빠져있는 느낌이다. 한참 잘 될 때의 동네 비디오 가게 보다 더 많은 성인 PC 게임방 만이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 성인의 5% 이상이 알코올에 중독 되어 있고, 10% 가까이는 도박에 중독 되어 있으며 청소년의 25%는 문제 음주를 하고 있고 비슷한 정도가 인터넷과 게임에 중독 되어 있다. 성인 여성의 상당수는 각종 온라인 오프라인 쇼핑에 중독 되어 있고 요즘은 어린이들마저 인터넷 쇼핑 중독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고 한다.

중독이란 어떤 대상에 과도하게 몰두하여 그 대상을 소비하는 행동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는 것을 말한다. 중독의 본질은 즉각적인 쾌락과 지연적인 고통을 대치하는 것이다. 몇 시간 동안의 현란한 즐거움에 눈이 멀어 점차 자신의 삶을 죄어오는 고통의 그림자를 애써 외면하는 것이다.

의학적으로 볼 때 중독의 원인은 선천적으로 중독에 취약한 뇌와 성장과정에서 형성된 중독에 취약한 성격, 그리고 중독을 부추기는 사회 환경이다. 하지만 욕망을 끊임없이 재생산하고 그것의 무한 충족을 장려하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삶의 태도가 중독을 부추기는 것이 아닐까? 개인의 자유는 있으되 공동체적 규범이 취약하고 개별적인 권리 주장은 만발하는 다원주의적 민주주의는 발전했지만 진정한 공익과 공리를 위한 공화제적 민주주의의 프로세스는 취약한 우리 사회가 바로 중독을 양산하는 것이 아닐까?

프로이드는 인간의 정신적 성숙에 대해 쾌락원칙과 현실원칙의 개념으로 설명한다. 영유아의 마음을 지배하는 원리는 쾌락원칙이다. 그것은 즉각적인 욕구의 만족을 추구한다. 배가 고프면 즉시 그것이 만족되어야 하고 기저귀가 젖었을 때 즉각적으로 갈아주지 않으면 울음을 터뜨린다. 여기에 비해 성숙한 어른의 마음을 지배하는 원리는 현실원칙이다. 이것은 현실적인 필요를 위해 즉각적인 욕구의 만족을 지연시킬 줄 아는 능력이다. 쾌락원칙에서 현실원칙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훈련을 필요로 한다. 욕구의 만족을 적절하게 지연시키면서 현실적으로 필요한 일을 먼저 할 수 있는 훈련이 필요하다.

우리는 훈련이 부족한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억압은 있으되 진정한 훈련이 부족하다. 은폐된 쾌락원칙이 지배하는 사회다. 나에게 필요한 것을 찾기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세상이다. 유교적으로 말해서 칠정의 표현은 장려되지만 사단을 위한 훈련은 미흡하다. 그 결과 내가 좋아하는 것은 덮어놓고 추구하기 싫어하는 것은 어떻게든 피하려 하는 것이 당연시 된다. 쾌락을 지연시키고 고통을 받아들이는 능력이 퇴화하고 있다.

내가 좋아하고 달콤한 것이면 정신없이 거기에 끌려가고 내가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무조건 도피하려고 하는 태도는 중독을 조장한다. 이것이 우리 사회를 비롯한 발전한 혹은 발전하고 있는 사회에 중독이 만연하는 한 가지 이유이다.

지금 이 순간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훈련이 필요하다.

받아들인다는 것은 무기력하고 수동적인 굴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아무리 고통스러운 것이라도 지금 이 순간에는 이미 현실의 일부가 되었음을 승인하는 것이다. 불만족스럽고 부당하다고 하더라도 지금 이 순간에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이미 현실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변화시키는 것은 다음 순간의 일이다. 하지만 변화시키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은 나 자신이며 내가 노력한다고 해도 모든 것이 내 뜻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노력의 결과 또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지금 이 순간 만을 위해 사는 삶은 중독적이다. 지금 이 순간 속에 사는 삶은 균형과 절제를 의미하고 이것은 중독을 치유한다.

[2006.09.03 23:13] 

김경승 마더스 병원장·정신과 전문의